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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영화,음악 등 우리의 삶을 윤기있게 가꾸는 이야기를 나눕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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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벼랑 끝에서 꽃 피우기 - 주먹이 운다.
식목일에 나무는 심지 못하고 '주먹이 운다.'를 보았다.
전날 보충학습 시간에 이육사의 '꽃'을 가르쳤는데
카펫 깔린 영화관의 계단을 내려 오면서
그 시가 생각났다. 간단히 감상을 정리하고 싶어졌다.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내리잖는 그 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



이 영화의 두 주인공 태식(최민식)과 상환(류승범)은
인생의 극점까지 몰려간 상황에서 링에 오른다.
그들에게 있어 복싱은
재생을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요, 탈출구이자
자신의 존재 증명이다.
따라서 그들은 링 위에서 죽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얼마나 험난한 인생을 살았는지
따로따로 전개된 그들의 삶을 목격해온 관객들은
그들이 링 위에서 만나 불꽃을 튀길 때
어느 누구도 응원할 수 없는 입장이 되어버린다.

예컨대 아버지가 공사장에서 급사하고, 또 얼마되지 않아서
유일한 혈육인 할머니마저 치매에 걸려버린 성환,
한때는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였으나 이제는 친한 후배에게
사기를 당해서, 모든 것을 저당잡히고 아내와 헤어지게 되었으며
먹고 살기 위해 인간 샌드백이 되어 거리의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대상이 된 태식.
그들이 삶의 마지막 수단으로 복싱을 택하게 된 데는
너무도 절박한 동기가 마련되어 있다.
누구를 택하여 응원할 수 있겠는가.
같이 영화를 본 아들녀석에게 물어보니
최민식이 이기기를 바랐다고 했다.
그가 더 불쌍했기 때문이란다.
딴은 그럴법도 하다. 최민식은 펀치 드렁크로
뇌 손상이 되어 '죽음의 결말'을 복선으로 깔아 놓은 상태가
아니던가? 물론 끝까지 죽지 않음으로써
감독이 사기친 것으로 밝혀졌지만....(이런 걸 MagGuffin Effect라고 한다지?)

그러나 그들의 피 튀기는 경기를 보면서
누가 이기는지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호기심이기는 하지만,
감독의 속셈을 넘겨 짚어 보는 재미를 주기는 하지만,
그리 권장할 만한 일은 아니다.
성환은 경기를 빨리 끝내야 하고
태식은 6라운드까지 경기를 이끌어야 한다.
서로 다른 입장으로 경기를 하고 있으나
이미 두 사람에게 승부는 진정한 관심사가 아니다.
경기에서 승리한 상환이 우승 트로피를 돌아보지 않고
할머니에게 달려가 끌어 안는 모습을 보라.
승부에 관계없이 두 사람은 자기 인생 새로 고침에 성공했고
주변 사람들을 감동시킴으로써 새로 출발한 조건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관객의 눈물어린 성원을 받으면서...

몇몇 거칠고 폭력적인 장면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결국 인생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은 작품이다.
21세기 한국, 그 심장부인 서울에서 살아 남는다는 것은
건강과 깡다구, 그 누구에도 빚보증을 서지 않는 강인함,
이런 것들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태식이 일일교사로
학교에 가서 아들의 학급 아이들에게 인생의 덕목으로 강조하는
이것들 중, 그 자신은 이미 건강을 잃었고,
후배에게 사기를 당한 처지이다.
감옥의 삶도 마찬가지다. 상환이는 남의 귀를 물어뜯는 깡다구가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매일 조롱당하는 수모를 견디고 살아야 한다.
왜 이렇게 사는 데 깡다구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는가?
우리의 인생관은 삶 속에서 여러가지 체험을 하며 변모해 간다.
태식이나 상환이나 어느 시절에 인정과 의리를 삶의 덕목으로 생각했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삶의 과정에서 여러번 배반의 상처를 경험하게 되고
이 경험은 강한 자기 보호의 막을 형성하게 된다.
가족은 자기를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이다.
이 가족관계가, 갑작스런 죽음으로써, 또는 이혼을 통해서 무너질 상황에 처했을 때
더 이상 이들은 살아갈 명분과 힘을 가지지 못한다.
6라운드 신인왕전은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쓸어버리도록 설계된
잘 짜인 장치이다.

감독의 시선은 젊은 사람답지 않게 긍정적이고 화해 지향적이다.
사기꾼인 태식의  후배가 세컨드를 보고,  인간 이하의 행태를 보였던
폭력배들도 태식의 경기에 숨을 죽인다.
다른 남자와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던 태식의 아내도
아들을 찾다가  경기장으로 들어오고,
치매에 걸려 병원에 누워 있던 상환의 할머니도 경기장에 들어온다.
물론 교도소에서 갈등관계를 이루었던 범죄자들도
텔리비젼으로 경기를 지켜본다.
이는 명백히 새로운 관계를 시작해보자는 제안이다.
두 사람의 복싱 경기 한 판은, 두 사람뿐 아니라
그들과 일정한 관계에 놓여 있는 모든 사람들의 한풀이요
새출발을 위한 제의 행위일 수도 있다.
거의 6라운드 경기를 다 보여 주는 것같은 이 장면은
그만큼 농축되고 집약된 화면이다.

대체로 감독의 의도에 동의하지만 다소 유감은 있다.
적대적 관계에 있던 이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화해에 동참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결말의 감정이 한 곳으로 집중되는 점은 좋지만
리얼리티는 다소 훼손됐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주 중후한 모습으로 초탈한 것 같은
멋진 국수집 주인,
그 사람은 왜 나왔을까?
조력자요 인도자의 기능을 하는 인물로 보이다가
그냥 아무 일도 안하고 말던데...
뭔가 깊은 사연이 밝혀질 듯하다가 그냥 말던데...
역시 속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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