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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설적인 명창 임방울이 부른 쑥대머리
쑥대머리  - 1937년 5월 5일 녹음

쑥대머리 구신형용(鬼神形容) 적막옥방(寂寞獄房)으 찬 자리에 생각난 것이 임 뿐이라.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낭군(漢陽郎君) 보고지고.

오리정(五里亭) 정별후(情別後)로 일장서(一張書)를 내가 못봤으니 부모봉양(父母奉養) 글공부에 겨를이 없어서 이러난가.

연이신혼(宴爾新婚) 금슬우지(琴瑟友之) 나를 잊고 이러는가.

계궁항아(桂宮恒娥) 추월(秋月) 같이 번뜻 솟아서 비치고져.

막왕막래(莫往莫來) 맥혔으니 앵모서를 내가 어이보며, 전전반칙(輾轉反側)으 잠 못 이루니 호접몽(胡蝶夢)을 어이 꿀 수 있나.

손가락으 피를 내여 사정(事情)으로 편지헐까. 간장의 석은(*썩은) 눈물로 임의 화상(畵像)을 그려볼까.

녹수부용(綠水芙蓉)으 연(蓮) 캐는 채련녀(採蓮女)와 제롱망채엽(提籠忘採葉)으 뽕따는 연인네도 낭군 생각은 일반이라.

옥문 밖을 못나가니 뽕을 따고 연 캐겄나.

내가 만일에 임을 못 보고 옥중 원귀(寃鬼)가 되거드면, 무덤 근처 있난 돌은 망부석(望夫石)이 될 것이요, 무덤 앞에 섰난 남근(*나무는) 상사목(相思木)이 될 것이오.

생전사후(生前死後)으 이 원통을 알어 줄 이가 뉘 있드란 말이냐.

아무도 모르게 울음을 운다.






  임방울의 생애

1. 출생과 성장기

국창 임방울(林芳蔚)선생의 본명은 임승근(林承根)이다. 1905년 4월 20일 전남(全南) 광산군(光山郡) 송정읍(松汀) 도산리 수성마을에서 농사꾼이었던 아버지 임경학(林敬鶴)씨와 어머니 나주김(羅州金)씨 사이에 8남매중 막내로 태어났다.

2. 화려한 등용과 본격활동기

임방울이 큰 뜻을 품고 상경한 것은 25세(1930)때였다. 동아일보사 주최 전국명창대회가 열리는 동양극장(東洋劇場)에는 명창들의 소리를 듣기 위해 전국 각처에서 구름같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여기서 임방울은 초라한 행색과는 달리 그의 목소리는 극장 안의 수 많은 청중을 사로 잡고 말았다.
"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옥방 찬자리에 생각난 것은 임뿐이라 "뱃속에서 바로 소리를 뽑아서 낸뿜는 통성에 쉰목소리와 같이 껄껄하게 우러나오는 수리성을 섞은 임방울의 소리가 울려퍼지자 장내는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조용했다.독특한 더늠에 전라도 사투리를 마음대로 구사하는 그 구수함이며 애간장을 녹이는 듯 끈질기면서도 애절한 목소리에 모두 도취되어 버린 것이다. 춘향전에서 옥중가의 한 대목을 부른 그 순간에 장내엔 처연한 기운이 서리고 박진감이 넘쳐 완전히 청중을 사로 잡았다. 그는 마음대로 소리를 구사해서 목청을 좌우로 제켜가면서 힘차게 뽑아냈다. 푸는목, 감는목, 찍는목, 떼는목, 미는목이 능숙했으며 자유자재한 성음에 성량 또한 풍부하여 막힌 데가 없었으니 그의 소리를 듣고 탄복하지 않는 청중들이 없었다.
8.15 광복과 함께 임방울은 전통적 판소리 보존의 집념이 더욱 강하게 불타올라 지방순회와 함께 후진 양성에 힘을 쏟았다. 1933년에 송만갑, 정정렬, 이동백, 김창룡 등이 주동이 되어 "조선성악연구회"가 결성되어 활발한 창극공연이 전개되었다. 임방울도 여기에 참가했으나 곧 이탈하여 하운창, 안기옥, 오태석, 정광수, 강도근, 박초월, 박귀희등으로 조직된 동일창극단에 참여했다. 임방울은 이 단체에서 창극보다는 주로 판소리를 불렀다.

3.불운했던 말년

일본은 우리 문화의 말살정책을 강행하여 판소리가 탄압을 받기 시작했다. 1940년부터1945년까지의 5년 동안은 판소리의 암흑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여건 속에서도 임방울은 인근의 국악인들과 함께 "임방울과 그 일행" 이라는 흥행단체를 조직하여 주로 시골의 장터를 중심으로 순회공연을 하였다. 1959년 7월 17일 조선일보 후원으로 원각사(圓覺寺)에서 국창임방울 독창회가 열렸다 그는 몸이 쇠약 했으나 소리를 하고 싶은 의지와 집념으로 계속 공연을 했다. 주위 동료들이나 후배들이 좀 쉬면서 건강을 회복하라고 충고하면 "소리하는 사람이 소리를 안 하면 죽은 목숨인 거여! 그래 나보고 산송장이 되란 말여! 소리를 하다가 콱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소리를 계속 헐 테여" 하면서 되려 나무랬다. 그해 가을 임방울은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 주위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김제 공연에 나섰다. 그는 소리를 하다가 죽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결국 전북 김제의 장터에서 소리를 하다가 피를 흘리고 쓰러졌다. 그 길로 서울 초동 집으로 옮겨졌으며 6개월 후인 1961년 3월 7일 밤 끝내 일어나지 못한 채 57세를 일기로 임방울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한국 판소리계의 마지막 대들보가 무너진 것이다. 장례식날 2백여명의 여류 명창들과 기생들이 소복을 입고 상두꾼이 되었다. 소복을 한 상두꾼들이 상여를 메고 지날 때 서민들은 서민의 목소리 국창 임방울을 잃은 슬픔에 잠겼다. 김소희씨의 목멘 조장이 한결 애끓게 했다. 그것은 소리광대의 슬픈 운명의 종장이었다. 앞선 트럭에서는 삼현육각(三絃六角)을 잡히고 그 뒤를 이어 소복의 여인들이 끄는 꽃상여는 우리나라 마지막의 소리광대를 싣고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났다. 57세를 일기로 61년 봄 임방울은 망우리 공동묘지에 다시는 들을 수 없는 아름다운 한(恨)의 소리와 함께 묻힌 것이다.(현재 그 묘지는 여주 남한강 사설공원 묘지에 이장되어 있다.)

그의 유산이라고는 데뷔당시 콜럼비아 레코드사에서 쑥대머리, 함평천지, 빅터 레코드사에서 이중선, 김소희 등과 함께 취입한 춘향전 그리고 해방 후에 취입한 몇몇 음반이 전부였다. 그가 죽었을 때 미국인 알란 헤이만 씨는 신문에 국보를 잃은 큰 손실이라는 제목 하에 임방울씨의 죽음은 한국에게만 슬픈 손실이 되는 것은 아니고 전 세계의 크나큰 손실이며 그와 더불어 한국문화의 위대한 일부도 갔다고 썼다. 임방울은 어린 딸이 관속에 넣어준 낡은 음반 한 장만을 가지고 갔다.

출처 : 국창 임방울 홈페이지  http://www.imbangul.or.kr/w-index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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