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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비평, 교단 체험, 교육 정책의 쟁점에 대한 의견, 마음을 적시는 휴먼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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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자 (2015-07-19 20:36:16, Hit : 1675, Vote :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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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명역에 가야한다.
광명역에 가야한다. 어머니의 집을 떠나 내 집으로 가는 것이다.
무궁화호를 타고 익산역에 가서 ktx로 갈아타는 환승 경로다.
위태롭게 걷는 어머니를 교회에 보내고, 10여분을 걸어 역에 도착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집 앞 골목을 빠져 나올 때 눌러 놓았던 감정이 갑자기 솟구쳤다. 액체로 만들어져 눈을 통해 배출되었어야 할 느낌들이 왼쪽 가슴 쪽을 강하게 때리고 지나갔다. 그리고 이내 눈 쪽 신경에 묵직한 긴장이 다가왔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심호흠을 함으로써 그 감정을 왔던 곳으로 되돌려 보냈다.
역 대합실의 게시판에 열차 시각표가 있었으나,
나는 습관적으로 코레일 톡을 실행하여 열차 시간을 확인했다.
20분 정도가 남아 있었다.
역사를 빠져 나와, 공용주차장 입구에 있는 정자를 향해 걸었다.
가는 도중에 빗발이 굵어졌다. 우산을 펴들었다. 노란 리본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새 우산.
작년 여름, 어느 집회에 가서 받은 우산이었다. 문득 스크린에 비춰진 팽목항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고, 나는 리모콘을 누르듯 도리질을 쳐 현재의 감각을 살려내었다.

그래도 청소 좀 해놓고 올 걸 그랬나? 쓰레기 버리려면 힘드실 텐데.
집을 나오기 전 이것저것 정리 정돈을 좀 할까 했었다. 하지만 몇 년이 흘러도 변함없는 이 집의 공간들이 마치 타인에 의한 어떤 변화도 완강하게 거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참을 서서 망설이다가 그냥 두기로 했다. 거실 한 구석에 방치되어 있는 마른 걸레 조차 이 집의 주인과 약속된 풍경을 연출하고 있는 것인 듯 눈에 익숙하기 그지 없었다. 아니 그게 세탁기나 쓰레기 통으로 이동함으로써 공백이 생기는 것보다 더 미학적인 풍경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적어도 어머니가 혼자 지내는 이 집에서는.
대문을 가만히 밀어도 열릴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 놓고, 가급적 천천히 걸었다. 역에 도착한 시간이 필요없이 이른 시간이 아닐 수 있도록.
어머니 집에서 역에 이르는 약 1.5킬로미터의 거리는 한때는 이 작은 도시의 중심 상권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은 몇집 건너 하나씩 상가가 문을 닫은 퇴락한 거리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 길을 걸어 역 근처에 있는 중학교를 다녔다. 그것이 언제던가. 40년 전? 실감이 나지는 않으나 계상 산으로는 얼추 맞는 수치다.

정자에 앉아 두리번거리며 의미 있는 풍경들을 찾아 나섰다. 삶은 늘 풍경의 기억, 그것이 가져오는 감정으로 남게 되는 것. 지금 이 시간을 오래 기억하게 할 어떤 장면을 찾고 싶었다.시각적 긴장이나 공감을 일으키는 어떤 장면들... 예컨대 빗속의 연인들, 빗물이 눈물을 훑어내리는 애상적 이별 따위.
하지만 역사 앞 반경 백미터 정도의 구역 내에서 어떤 로맨스도 없었다. 딸을 배웅하러 나온 늙은 엄마의 어서 가라는 손사래 같은 것조차 없었다.
택시 승강장에서 경박스럽게 니코틴을 흡입해대는 사내들의 허튼 웃음소리, 간간이 섞여 들리는 욕지거리, 주차장에 막 도착한 승합차에서 내린 초등학생과 그의 부모가 원격시동경보기의 삑- 소리를 남기고 재빠른 몸짓으로 역을 향해 뛰어가는 모습. 건너편 정육점 처마 밑에서 멀거니 횡단보도를 응시하는 할머니 한 분. 그녀의 몸빼바지가 아래 쪽부터 젖어가는 게 보였다. 나는 다시 어머니를 떠올렸다.
아직 주기도문을 외울 시간은 아니겠군. 어머니로서는 가장 안전한 공간에 계시는 셈이니 걱정하지 말자.
역무원의 열차 도착 안내 방송을 들렸다. 나는 정자를 떠나 다시 역사로 돌아왔다. 편의점에 들러 생수 한 병을 사고, 플랫폼 쪽으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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