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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석 (2007-02-15 20:52:08, Hit : 6163, Vote :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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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조와 하이쿠



시조와 하이쿠
(차후 보완)

최종 수정일 : 2007.02.03.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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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사



시조



고대의 시조
시조발생에 대하여는 학설이 구구하나, 그것은 신라 향가(鄕歌)에 접맥되어 싹틀 기미를 마련했고, 고려 중엽에는 고려 장가(長歌)가 분장(分章)되어 그 형식이 정제되었으며, 고려 말기는 3장 12구체의 정형시로 정형되었으리라 믿어진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는 고구려의 을파소(乙巴素), 백제의 성충(成忠), 고려 초기의 최충(崔冲) 등의 것이 있고, 고려 말기의 우탁(禹倬) 이조년(李兆年) 방원(芳遠 : 太宗)의 《하여가(何如歌)》정몽주(鄭夢周)의 《단심가(丹心歌)》등 10여 수가 남아 있다.

조선시대로 접어들면서 날로 계승 · 발전되어 송강(松江) 정철(鄭澈).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 등의 대가를 배출하였다. 조선 중기에는 황진이(黃眞伊)를 배출하여 시조의 난숙, 절정기를 이루었다. 양반들에 의해 지어진 종래의 단형(短型)시조임진왜란을 계기로 드러나기 시작한 산문정신에 힘입어 양반의 생활권을 넘어 평민계급으로 파급되면서 그 형식은 평시조의 소재이던 자연에서 눈을 돌려 실생활에서 소재를 구해 장형(長型)으로 분파되었다.

조선 중기를 넘어서 시조가 양적으로는 늘어났으나 질적인 저조를 면하지 못하였다. 영정조(英正祖)시대에는 구전되어 오던 시조의 일실(逸失)을 염려하여 편찬사업이 성행하였다. 1728년(영조 4) 김천택(金天澤)의 《청구연언(靑丘永言)》을 효시로, 63년(영조 39)에는 김수장(金壽長)의 《해동가요(海東歌謠)》1876년(고종 13)에 박효관(朴孝寬)과 안민영(安玟英)의 《가곡원류(歌曲源流)》그 밖에《고금가곡(古今歌曲)》《동가선(東歌選)》《남훈태평가(南薰太平歌)》《객악보(客樂譜)》 등의 시조집들이 쏟아져 나왔음은 시조의 보존을 위한 쾌사였다. 조선 후기까지 시조 편수는 2,000여 수에 달하는 방대한 것으로 거기에 담긴 사상과 정서는 한국의 역사를 시간과 공간으로 그대로 꿰뚫어 모은 정신적 유산이라 할 수 있다.

현대의 시조
신구문학(新舊文學)의 분수령인 갑오개혁을 맞아 시조는 서서히 궤도를 이탈하였다. 그 향도역(嚮導役)을 맡은 이가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이다. 1926년에는 프롤레타리아문학에 대립하여 국민문학론이 대두되면서 시조부흥운동이 전개되었고, 최초의 현대시조집인 육당의 《백팔번뇌(百八煩惱)》가 그 해에 발간되었으며, 최남선,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 자산(自山) 안확(安廓) 등의 작품은 아직도 예스런 면이 있기는 하나 현대시조의 산파역을 하였다.

그리고 갑오개혁 이후의 시조를 모조리 현대시조로 다루기보다는 이상 열거된 이들의 시조를 신시조(新時調)로 다루고 그 이후부터의 시조, 곧 가람(嘉藍) 이병기(李秉岐), 노산(鷺山) 이은상(李殷相) 이후의 작품을 현대시조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현대시조에 본격적으로 이바지한 사람은 이병기· 이은상 등이며, 1931년에는 《노산시조집》이, 1947년에 《가람시조집》1948년에 《담원(薝園) 시조집》(정인보 저) 등이 발간되었다.

시조의 멸실
시조가 언제부터 멸실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필자는 모른다. 감히 추측하건, 조선 말기 시조가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조선 말기 이전부터 서서히 멸실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허나 시조는 하루아침에 쉽게 깨어질 그릇은 아니다는 관점은 필자의 추측을 부정한다. 시조가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 융성하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 이유가 없다. 조선 중기를 넘어서 시조가 양적으로는 늘어났으나 질적인 저조를 면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파란만장의 조선 말기는 소재를 상당히 제공하였다. 그러나 시조는 생산되지 않았다. 필자는 조선 말기에도 시조가 생산되었으나 일제가 통치차원에서 매장한 것으로 본다.

해방 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의 계급문학에 대항하여 최남선(崔南善), 이광수(李光洙)가 중심이 되어 국민문학운동의 핵심운동으로 시조부흥운동이 전개되었으나 시조를 회생시키지 못하였다.

가람 이병기가 시조는 혁신하자며(동아일보 1932년 1월 23일부터 2월 4일까지 11회에 걸쳐 연재) 3.8선 가르듯 시조도 고시조(古時調) 와 현대시조로 갈라놓고, 옛 말이란 이유로 文語와 자연을 읊은 음풍농월을 축출하였다. 조운(曺雲)은 이에 뒤질세라 시조의 형체인 句와 章를 파괴하였다. 이병기가 시조의 본질을 부정내지 말살하고 현대시조를 창시하여 자유시에 접목시켜 놓았으니 차마 시조라 할 수 없는 가고파(이은상)가 시조라는 이름으로 탄생하고야 말았다. 그 후 字數도 音步도 파괴되었고 마지막 보루라 할 수 있는 終章마저 현대시조의 깃발 아래 무참하게 파괴되었으니, 시조는 급기야 시조인지 자유시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해괴한 몰골로 멸실의 고개를 넘어가고 말았다.

지금도 현대시조가 시조를 부관참시하니 회생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겠다.

 참고
  • 시조를 혁신하자 / 이병기(李秉岐) : 1932년 1월 23일부터 2월 4일까지 11회에 걸쳐 연재.
    1925년경부터 10년간은 프로파와 민족파가 우리 문단을 할거하였다. 이 시기에 민족파에서는 시조의 부흥을 꾀하였으나 그 작품과 이론의 수준이 프로파의 주장에 비하여 열세를 면치 못하였고, 그 결과 시조의 존립의의에 대한 찬부(贊否)양론이 엇갈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해보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집필된 것이 이 논문이다. 시조는 정형이며 고전적이면서도 오히려 시조의 존립의의는 그 정형과 고전적임에 있다고 설파하면서 명료하고 평이한 대중문학, 진실하고 신선한 사실문학(寫實文學)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을 촉구하였다.

    이에 시조가 혁신되어야 할 점으로, ① 실감실정(實感實情)을 표현하자. ② 취재(取材)의 범위를 확장하자. ③ 용어의 수삼(數三 : 선택) ④ 격조(格調)의 변화 ⑤ 연작하자 ⑥ 쓰는 법, 읽는 법 등 여섯 가지를 들었다. 종래의 투어(套語)나 인습적인 작법에서 벗어나자는 것, 취재의 범위를 넓혀 자기류의 작풍(作風)을 수립하자는 것, 부르는 시조보다도 짓는 시조, 읽는 시조로 발전시키자는 것이 중심골자였다. 특히 격조에 대하여 "격조는 그 말과 소리와 합치한 그것에 있다"고 함으로써 양자의 결합관계로 고찰한 것은 그 당시로서는 발전적인 사고였다.

    그러나 짓는 시조 읽는 시조를 강조한 나머지 부르는 시조와의 화해를 전연 고려하지 않은 태도는 온당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도 시조의 과거가 창(唱)의 흐름이었다는 관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연작의 문제인데, 과거의 것은 각수(各首)가 독립된 상태였던 것을 제목의 기능을 살리고 현대시작법을 도입하여 여러 수가 서로 의존하면서 전개, 통일되도록 짓자는 주장이었다. 이러한 주장을 창작으로 실천하여 완성한 이가 이병기 자신이었고, 오늘날 형태의 발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는 엄격히 보면 시조의 전통적 연작법으로서는 어긋나는 것이다.

    출처 : 시조를 혁신하자 /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네이버 / 시조의 역사에서 "고대의 시조"는 원문을 게시하였으나, "현대의 시조"는 각색(脚色) 함.
         출처 : 네이버

     현대시조계는 최남선의 “백팔번뇌”가 우리나라 최초의 시조집이라 하였으나, 어느 날 갑자기 뒤엎어버리고 (혈죽가 / 대구여사)가 현대시조 최초 작품이라 하였다)


하이쿠



하이쿠라고 하는 것은, 메이지 시대에 마사오카시키(正岡子規)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하이쿠(俳句)라는 통칭이 사용되게 되었던 것도 메이지(明治) 이후다. 물론 '마사오카시키'가 하이쿠를 발명한 것이 아니다. 그 이전에도 하이쿠와 같은 것은 존재하고 있었다. 에도시대에는 그것을 하이카이(排諧)라 한다. 이것은 "하이카이의 연가(俳諧はいかいの連歌)"의 약칭이며, 원래 렌카(連歌)가 토대인 문예다.

렌가(連歌)는 무엇인가? 한시(漢詩)에 대한「산과 노래」를 와카(和歌)라 한다. 만뇨슈(万葉集) 무렵에, 5 · 7, 5 · 7, 을 반복해 노래하고 마지막에 7음을 더하여 끝나는 형식의 와카(和歌)가 태어났다. 이것을 장가(長歌)라고 한다. 그 말미만을 잘라낸「5,7,5,7,7」의 형식을 단가(短歌)라 한다. 장가(長歌)는 그 후 소용없게 되어 단가(短歌)가 융성하여 와카(和歌)라고 하면 단가(短歌)를 능가할 정도였다. 이 단가(短歌) 첫 구(5,7,5)와 다음 구로(7,7)로 나누어 여러 사람이 교대로 노래하는 것이 렌카(連歌)다. 본래 렌가(連歌)는 귀족의 놀이로서 발전했다. 그것이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 무렵부터, 서민 사이에 유행하여 우스운 특색을 가지는 하이카이 렌카(俳句はいかいの 連歌)가 되었다.
 
에도시대(江戸時代)가 되면 한층 더 융성하여 하이카이(俳諧)는 문예로 확립되었다. '이하라 니시츠루' '마쓰오바쇼' '요사부손' '고바야시잇사' 도 하이카이(俳諧) 작자다. 하이카이(俳諧)는 여러 사람이 하는 문예다. 최초의 사람이 5,7,5의 구를 읊으면, 다른 사람이 거기에 7,7의 구를 붙인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이 5,7,5의 구를 읊고, 다른 사람이 7,7의 구를 붙이는 것을 반복한다. 단순히 구를 서로 붙이면 되는 것이 아니고, 거기에는 연구식목(連句式目)이라고 하는 까다로운 룰이 있다. 이 룰에 따라서 에도 사람들은 게임과 같이 하이카이(俳諧)를 즐겼다.
 
백구(百句)가 될 때까지 계속하기도 했다. 이 때 최초의 구를「첫귀」라 하고 계절어(季語きご)와 기레지(切れ字)가 있고, 렌가(歌れんが) 하이카이(排諧はいかい)의 첫 구에서 구를 매듭을 짓는 말로서『∼や(∼이여)』『∼かな(∼로다)』『∼けり(∼구나)』등을 넣은 구를 읊도록 되었다. 이 첫 귀가 독립하여 하이쿠가 되었다.

하이카이(俳諧)도 메이지 무렵 점점 매너리즘이 되어 시시하게 되었다. '마사오카 시키'는 하이카이(俳諧 )는 문학이 아니라며 비판했다. 시답잖은 수준이고 비속하고 진부하다 했다. 그리고「첫귀」만을 떼어내 감상하는 것을 제안했다. 이것이「하이쿠 개혁」이라고 불리고 있는 것이다. 즉 하이쿠는 하이카이 렌카(俳諧 の連歌)의 최초의 구다. 그리고 단가(短歌)의(5,7,5,7,7) 상구(上句)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가 하이쿠 형식이나 룰의 바탕이 되었다.

1999년이 하이쿠 탄생 500주년이다.

출처 : 俳句は、いつから俳句となったのか




특    징



시조



  • 틀은 3章 6句 12音步이다.
  • 사상과 철학의 분출구이다.
  • 일목요연한 하나의 문장이고 메시지이다.
  •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우회적으로 표현한다.
  • 비유로 시작하여 비유로 끝난다.
    당사자나 이해관계자가 아니면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시조도 있다.
  • 반듯이 기승전결이 이루어 져야 한다.
  • 촌철살인의 표본이다.
  • 시조는 詩가 아니다. 즉 詩調가 아니고 時調이다.
    시조서 詩的인 것도 자유시와는 확연하게 틀린다.
    시조란 시절의 노래, 즉 시절가조(時節歌調)의 약칭이다.
    때시. 節 마디절. 歌 노래가. 調 고를 조.
    즉, 그 시절의 사건(事件)이나, 사건(私件)에 대한 작자의 심경을 43자 내외에 압축한 것이다.
  • 시조는 역사와 사회상의 기록이다.
  • 부각된 사건의 결말은 반듯이 작자가 맺는다.(보편타당성이 있다)


  하이쿠


  • 5 · 7 · 5의「운률(韻律)」로 읊어지는 정형시다.
  • 외래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 반듯이「계절어(季語)」가 들어가야 한다.
  • 한 곳은 반드시「기레(切れ)」가 있다.
  • 여운을 남긴다.

    잘라라(切れ)
    하이카이는 최초로 읊어진 첫 귀(発句)는 후에 잇는다. 첫 귀(発句)는 둘째 구(句)나 평구(平句)의 동기가 될 필요가 있다. 그 때문에 첫 귀는 둘째 구에 의존하지 않는 완결성이 요구되었다. 거기서 짜내진 테크닉이「잘라라」다. 능숙하게 끊어진 첫 귀는「잘랐지만 있다(切れがある)」라고 평가되어 중시되었다. 현대의 하이쿠도「끊어라」는 중요한 테크닉의 하나며「끊어라」가 없는 구(句)는 하이쿠로 평가되지 않는다.

    기레지(切れ字)
    강제적으로 구(句)를 자르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 기레지(切れ字)다. 현대의 하이쿠에서도 사용되고 있는 기레지(切れ字)에는,「~일까 (~かな」「~여 (~や」「~구나 (~けり)」등이 있다. 하이쿠 이전의 렌카(連歌) 하이카이 시대에는「~もが~싶구나 ~좋으련만 ~し(접속사 : 앞에 말하는 사항이 뒤에 말하는 사항과 병렬적, 대비적인 관계임을 나타냄)「~ぞ ~한데, ~하랴, ~ぞ (혼잣말로) 스스로에게 다짐하거나 판단함을 나타냄」「~か ~지 (불확실한 짐작을 나타냄) 」「~よ ~이여. ~여. ~야. ~아. (부름을 나타냄)등, 앞의3개와 합해 합계18 종류의 조사, 조동사가 사용되고 있었다.


  • 하이쿠를 읊을 때 따라야 할 6조
    1. 시심을 파악한다. (詩因を捉える)
    2. 분량을 분별한다.
    3. 생략을 교묘하게 한다.
    4. 배합을 궁리한다.
    5. 이해할 수 있는 용어를 사용하고, (わかる用語を使って)
    6. 세세한 곳까지 주의 깊고 꼼꼼하게 읊는다.


  • 하이쿠를 읊을 때 피해야 할 8조
    1. 계절 어가(無季) 없는 구를 읊지 않는다.
    2. 계절어가 겹치는(重季) 구를 읊지 않는다.
    3. 공상의 구를 읊지 않는다.
    4. (이)나 · 일까를 병용한 구를 읊지 않는다.(や・かなを併用した句を詠まない)
    5. 감정 등을 나타내는 연체 수식어를 위에 붙이고 부사적으로 병용한 구를 읊지 않는다.
    6. 감동을 노출 한 구를 읊지 않는다.
    7. 감동을 과장 한 구를 읊지 않는다.
    8. 모방의 구를 읊지 않는다.


비고


하이쿠가 점이고 일차원의 세계라면, 시조는 선이고 3차원의 세계이다. 하이쿠는 여백의 미를 강조하지만 시조에는 여백이란 있을 수 없다. 하이쿠는 점과 점 사이의 여백으로 인해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하나 시조는 일목요연한 하나의 문장이기에 강물처럼 자연스럽게 흐른다.

하이쿠는 여백의 공간을 개개인의 천차만별한 감성과 사고 그리고 처한 처지 등에 의해 독자들이 채우지만, 여백이 없는 시조는 독자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어 있다. 하여 하이쿠는 독자의 감상이 일률적이지 못하지만, 반듯이 기승전결로 이루어진 시조는 독자의 감상이 일률적이다. 하이쿠에도 촌철살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승전결로 구성된 시조보다 선명하지 못하다. 시조는 사상과 철학의 분출구이기에 하이쿠에 비해 작자의 철학과 사상이 분명하게 표출되는 것이다.

하이쿠의 철칙도 까다롭지만 시조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이다. 시조는 17자인 하이쿠보다 훨씬 많은 43자다. 그것은 또 3장 6구 12음보로 나누어지며 반듯이 기승전결이 되어야 한다. 기승전결이 이루어지려면 음보와 구와 장이 상호 보완하여 유기성을 유지하여야 한다. 시조는 내외적인 것과 자연스러운 흐름이 모두 충족되어야 비로소 시조가 되는 것이다.

하이쿠는 누구나 지을 수 있지만, 시조는 대해(大海)를 43자 내외라는 조그마한 종지에 담아야 하기에 아무나 지을 수 없다는 특성이 있다. 이렇듯 시조와 하이쿠는 상당히 상이한 점이 많지만 같은 것이 있으니 그것은 시조도 하이쿠도 詩가 아니라는 것이다.




현    황




시조



현대시조가 출몰함으로 해서 시조는 죽었다. 현대시조가 시조를 학살한 것이다. 시조의 역사가 700~800년이건만 아직 시조에 관한 정설은 없다. 현대시조시인들은 접어두고라도 그저 명색뿐인 지도자라 일컬어지는 사람조차도 시조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도 없다. 시조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현대시조가 시조의 틀을 하나하나 변형, 파괴, 말살하였으니 오늘날 시조는 그 형체조차도 알아 불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세계적으로 독특한 문예를 보유하고 있는 시조가 호평받기는커녕 교과서에서조차 외면당하는 신세로 전략되었다. 시조를 말살한 현대시조의 향도인 가람 이병기, 노산 이은상의 책임도 크지만, 현대시조계와 학계의 책임도 결코 작다 할 수 없다.

도서의 올림픽이라 할 수 있는 2005년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서 한국은 주빈국으로 선정되어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릴 절호의 기회를 맞았었다. 그러나 30억원의 예산을 들여 번역 소개할 ‘한국의 책 100권’ 목록에 시조집이나 시조 관련 책자가 단 한 권도 없다. 예컨대 고우영의 만화 ‘일지매’는 있는데, ‘청구영언’이나 ‘노산시조집’ 같은 것은 없고, 한국 대표 시인의 시 10편을 영어로 번역하여 선보이는데 시조는 단 한 편도 없다. 더구나 한심스러운 것은 250억원의 예산을 들인 주빈국으로서 한국문학을 소개할 62명의 문인 중에 시조시인은 단 한 명도 끼지 못했다. 국제도서전에 시조는 왜 빼나 / 박구하

시조협회가 있다하나 회관은 고사하고라도 그 흔한 사무실도 홈페이지도 없다. 여러 계파들이 제 팔 제가 흔들었으니 그것은 당연한 소출이라 하겠다. 현대시조시인이 1,000여명이 된다지만 제대로 된 단시조 하나 변변하게 짓는 사람도 없다. 등단한 현대시조시인과 일반인과의 다른 점을 발견하기란 극히 어렵다. “시조집은 공짜로 줘도 읽지 않는다”는 말이 소위 현대시조시인이란 이의 입에서 스스럼없이 나오는 처지라 독자를 찾으려면 우주선을 동원하여야 한다.

시조의 정의를 구성하는 서까래가 지금까지 무엇 하나 확립되지 않았으니 사이비 시조가 창궐하여 문전옥답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끼리의 문화는 시인이란 달콤한 과일을 탐내는 바람에 편승하여 시조의 시짜도 모르는 문외한들을 현대시조시인이란 이름으로 대량 양산하였다. 그것 보다 더욱 큰 문제는 지도자라는 사람조차도 시조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시조라면 43자 내외의 단시조이다. 그러나 본래 짧은 것에 담지 못하는 능력 없는 무리들이 정체성을 부정하고 틀을 파괴하면서까지 족보에도 없는 국적불명의 해괴한 옴니버스시조와 도저히 시조라 할 수 없는 괴이한 것을(참고 : 비평) 시조라 명명하고 가르치고들 있으니 시조라는 산모 뱃속에는 깜둥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시조가 끼리의 문화에서 태어난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참고 (목록 클릭)
  시조는 버림 받아도 싸다 / 김원
  부산일보 신춘문예당선작에 대하여 / 청람 이봉수
  중앙시조대상 및 신인상 24회 / 홍성란
  이제 산문시조가 도래하는가 / 임영석
  옴니버스 시조 등 / 윤금초
  시조한마당 / 비평


하이쿠



마사오카시키(正岡子規· 1867~ 1902)가 한낱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것을 하이쿠로 명명하고 완성시킨 이래, 일본인은 오늘날 음절수 하나 파괴하지 않고 국민의 시로 다지더니 급기야 세계의 시로 승화시켜 놓았다.

하이쿠는 일본에서 태어난 독특한 문예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 일본의 정형시 하이쿠(俳句)가 그것이다. 하이쿠는 5, 7, 5의 운율을 지닌 한 줄짜리 시(간혹 삼행으로 나눠 쓰기도 한다)로 오랜 전통이 있고 오늘날까지 창작되고 회자되는 대중 시이기도 하다. 일본인들이 하이쿠를 오늘날까지 사랑함으로써 일본어를 갈고 닦는다. 사실 하이쿠는 다작하는 그 가운데 수작이 생겨나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유명한 하이쿠 작가들의 작품도 수만점 중에서 가려낸 수작들이 전해지는 것이다.

일본에는 현재 800에서 1000개에 가까운 하이쿠 결사(結社)가 있다. 결사란 공동의 문학적 취지하에 하이쿠잡지를 내는 것을 목적으로 주재자(主宰者)를 중심으로 모이는 하이쿠 집단을 가리킨다. 최근 들어서는 문화센터와 유사한 하이쿠 교실이 성행하고 있는데, 이 교실들은 하이쿠를 즐기는 사교모임으로도 한몫하고 있다. 다른 취미활동보다 하이쿠는 서민들의 지적 욕구를 채워준다는 면에서 더욱 흡수력이 있는 것이다. 일본 위성방송에는 하이쿠 왕국(俳句王國)이라는 정규프로그램이 있어 하이쿠가 일본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짐작케 한다. 근 한 세기가 지난 지금은 가장 세계화된 일본의 정신유산으로 확고부동하게 자리 잡았다.

몇 사람의 하이쿠시인이 모여 음행(吟行)(하이쿠를 읊기 위해 경치가 좋은 곳이나 명승고적을 찾아 걸어 다니는 것)을 한 뒤, 한자리에 모여앉아 완성한 작품을 익명으로 제출한다. 이 작품들을 익명인 채로 벽에다 붙여 놓으면, 각자가 마음에 드는 작품에 빨간 점을 붙이며 왜 좋은지 이유를 설명한다. 한 차례 평이 끝나면 드디어 작가를 공개하게 되는데 가장 많은 점을 얻은 사람이 그날의 승자가 된다. 각자의 견해가 다양하겠지만, “벌레“라고만 해도 가을밤을 연상할 수 있는 미적 공감대가 필수적이며 그러한 공동의 미의식을 매개로 한 일종의 놀이인 것이다.

뿌리가 일본 나라(奈良 710~84)시대 와카(和歌)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하이쿠는 오랜 세월을 건너 지금 일본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애호가가 1000만명에 이르고, 전문월간지만 8개, 동인지는 800여개가 나온다니 말 그대로 ‘하이쿠의 시대’다. 일본 밖에서도 문학적으로는 릴케에서 옥타비오 파스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인에게 영감을 주었다. 하이쿠는 미국초등학교교과서에도 실렸고 대중적으로는 뉴욕타임스가 최근 뉴요커들을 대상으로 하이쿠를 공모할 정도로 유행에 가까운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하이쿠의 영향을 받은 오늘날의 예술가들은 적지 않다. 알렌 긴스버그(Allen Ginsberg)나 게리 스나이더(Snyder, Gary Sherman) 같은 대표적인 현대 시인이 그렇고,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체슬라브 밀로즈(Czeslaw Milosz)는 하이쿠 애독자였다. 또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해도 하이쿠적인 시인 역시 많다. 윌리엄 워즈워드가 대표적이다. 오늘날 하이쿠는 그토록 세계적이 되었다. 유럽에는 아예 스스로 하이쿠 시인을 자처하는 이들도 있고 영문 하이쿠 시집이 계속 출간되고 있다. 일본을 방문하는 서양 사람들 특히 정치인들은 연설 중에 하이쿠를 자주 인용한다.

라후카디오·하안(고이즈미 야쿠모)이 구미인으로는 처음으로 하이쿠의 매력을 발견한 것이 19세기 종반이다. 20세기 초에는 프랑스의 폴·루이·크슈가 자작을 정리한 구집을 출판하여 하이쿠 붐을 야기하고 있다. 즉 하이쿠의 국제화에는 벌써 100년의 역사가 있다. 1970년대에 하이쿠가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아 국제화 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지금은 약 50국에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각각의 모국어나 영어로 하이쿠를 읊으며 즐기고 있다. 하이쿠는 유럽 등 서구에는 이미 1910년대 에즈라 파운드를 중심으로 한 이미지즘이 일어났을 때 소개되었다.

하이쿠가 오늘날 일본의 국민 시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하이쿠라는 식탁에 멋진 세 다리가 된 세 명의 위대한 하이쿠 시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츠오바쇼(松尾芭蕉·1644~1694). 고바야시잇사(小林一茶·1763-1827). 요사부손(与謝蕪村·1716~1783)이 바로 그들로 이들은 여러 가지 음식을 올려놓을 수 있는 하이쿠라는 식탁을 마련해 놓았다.

   
아래 명기한 곳에서 부분적으로 발췌하여 편집함.

        国際俳句交流協会
        짧은 시를 읽고 긴 글을 쓰다 / 류시화
        동아일보 매거진(신동아) / 2000년 6월호
        일본 문화의 힘-세계는 왜 J-컬처에 열광하는가 / 동아시아 펴냄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 하이쿠 감상법 / 유옥희 계명대학교 일문학교수
        17字에 응축된 일본 정서(문화일보) / 순간 속에 영원을 담는다-하이꾸 이야기 / 전이정 / 창비




미    래



시조전문사이트는 여러 곳 있으나 시조를 위한 사이트는 없다. 신춘문예를 비롯하여 시조문학상은 참으로 많다. 허나 각 파마다 자신들 파와 관계없는 시조문학상은 게재하지 않는다. 신춘문예시조당선작을 비롯하여 각종 시조문학상 작품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아, 시조문학상 작품을 보려면 검색엔진을 가동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검색 엔진을 가동해도 어려움이 따르는 것은 마찬가지다.

시조전문사이트라고는 하지만, 사이트마다 시조에 관한 자료가 상당히 미약하다. 자료를 요청하면 꿀 먹은 벙어리다. 시조랍시고 발표되는 작품들이 시조인지 여부는 일단 접어두고라도, 좋은 글이라 해서 퍼 나른 것과 안부인사 등등 잡동사니가 시조에 관한 자료보다 훨씬 많다. 하여, 시조전문사이트인지 친목단체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하이쿠는 이미 세계적인 시가 되었으나 시조는 국내서조차 박대당하는 신세다. 시조와 하이쿠의 미래를 훔쳐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아 시조와 하이쿠 사이트를 명기한다.

     시조사이트 (목록 클릭)
         한국시조학회
         시조월드
         시조대학
         달가람시조문학회
         한국시조문학작가협회
         시조문학진흥회(사단법인)

     하이쿠 사이트 (목록 클릭)
        日本傳統俳句協會(일본전통하이쿠협회)
        俳句王國(하이쿠왕국)
        現代俳句協會(현대하이쿠협회)
        インタ-ネット俳句(인터넷하이쿠)
        國際俳句交流協會(국제하이쿠교류협회)


   참고
       인조이재팬 (일본어가 한글로 번역됩니다 / 우측 번역란에 일본 사이트 주소 입력)
          일본어가 깨지면 일본어를 지원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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