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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대한 , 우리 사회의 쟁점들에 대한, 인식의 심화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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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석 (2007-02-15 20:50:59, Hit : 4562, Vote : 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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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초리








회 초 리

최종 수정일 : 2007.02.04. 15:35 



저 양반 잣대 없이 포목점 차려 놓고
장사는 뒷전이고 기네 짧네 싸움인고
전직이 무엇이더냐 엿장수라 하더라


굳이 헌법의 존재를 역설하지 않아도 학교에도 교칙이 있고 동호회도 회칙이 있으며, 심지어 어린애들 구슬치기. 딱지치기. 공기놀이에도 규칙은 있다. 구슬치기는 규칙이 있음으로서 공기놀이가 되지 않고 구슬치기가 되는 것이다. 규칙은 다만 놀이를 구별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놀이를 함에 있어 야기될지도 모르는 분쟁을 사전에 차단하고 놀이를 원활하게 진행시키는 기능도 있다.


무엇을 말하고자 함에 있어 이렇게 서론이 긴 것은, 변변한 단시조 하나 짓지 못하는 주제에 시조시인입네 거들먹거리는 작자들 지적수준에 맞추기 위해서다. 아직도 낌새를 채지 못한 얼뜨기가 있다면, 날씨도 화창한데 막걸리 손목이나 잡고 산책이나 갈지어다. 짓거리가 미덥지 않아 이르나니, 산책길에도 꼴값한답시고 시상이 "떠오릅네, 어떻네" 호들갑 떨면서 땅바닥에 퍼져 앉아 끼적거리는 짓거리로 오가는 사람들 거추장스럽게 하지 말지어다.


왜?
어째서?
시조에는 성이 없는가?
시조는 천박한 집안 자손이라 양반처럼 성을 가지지 못하는 것인가?

"시조의 성이 무엇이냐" 묻고 싶은 얼뜨기 시조시인에게 이르나니 잘 들어 볼 지어다.
"시조의 성이란 자수율이다.
"뒷간서는 뒷씨고, 색시 방서는 색씨고 등등등.......
자신들 능력에 따라 자수율을 함부로 취급하니 이거야 울분이 나서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시조가 사대부집안 자손이라면 하루빨리 오랑캐가(사이비 시조인) 약탈해 간 자수율을 되찾아 더 이상 쌍놈이라는 팻말을 목에 걸고 다니지 않았으면 좋겠다.




명월이 분 내음도 갈 곳 없는 그믐이고
고산이 출두한들 유배를 면 할 손가
아해야 문방사우는 노장 하라 일러라



명월 : 황진이 기명(妓名)
고산(孤山) : 윤선도 조선시대 시조의 대가
노장(路葬) : 과년한 미혼 처녀나 청춘 과부 등 소원대로 살지 못한 사람의 시체는 사람의 왕래가 빈번한 곳에 묻어
                  간접적으로나마 남성과 접촉을 가지게 했다. 민속적 유래를 가진 장사다.
문방사우 : 종이, 붓, 먹, 벼루의 네 가지 문방구

"옛 선인이 쓰시던 고시조 어투는 아무리 표현이 좋아도 현대시조 단에서는 외면당하기 싶다" 는 의문부호를, 고맙게도 2004년 조선일보 심사자가 다음과 같이 풀어 주었다. "복고주의를 떨쳐버리지 못한 고풍스런 발상이나 이제 식상할 대로 식상한 예사 말의 늪을 훌쩍 헤쳐 나오지 못한 작품은 의당 논의의 대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것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작자들이 대로를 가로막고 창작을 방해하고 있는 현 풍토는 황진이(기명 : 명월)는 그믐이고, 윤선도는 유배지다. 시조의 대가인 윤선도와 황진이를 현세에 모셔 온다 해도 덜떨어진 자들에게 푸대접받을 것이 자명한바, 차라리 문방사우는 노장 시켜 달랠 수밖에,


시조계서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고어는 쓰지 마라" "문어는 쓰지 마라" "고풍으로 쓰지 마라" "음풍농월 마라"는 주문은 어느 집 개가 짖느냐는 식으로 흘러 보냈지만, 자수율이 시조고 시조가 곧 자수율이기에 편한 길로 가고자 자수율을 함부로 취급할 수 없다. 시조시인이란 갓을 쓰고자 제멋대로 자수율을 무너트리는 무리들은 더 이상 시조를 괴롭히지 말고 무풍지대인 자유시 쪽으로 가는 것이 옳다.



톱질도 못질도 아니 된다 하오시니
기와집 접어두고 까치집 지으리까
청컨대 대목이시여 초가 지어 보소서


톱질도(옛말) 못질도(음풍농월 : 자연) 아니 된다 하오시니(현대시조에서는 써서는 안 된다 하니) 기와집 접어두고(시조는 아니 짓고) 까치집 지으리까(도저히 시조라할 수 없는 시조 현대시조를 지으리까?) 청컨대 대목이시여(옛말과 음풍농월을 금지시킨 기라성 같은 현대시조시인) 초가 지어 보소서(기와집은(시조) 고사하고 라도 시조다운 시조)


왜 그들은 한사코 표현의 영역을 좁히려 하는가? 한국사람이라면 고어나 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왜 그들은 시조를 고시조와 현대시조로 갈라놓고 한사코 고시조와의 관계를 청산하려는 것일까? 시조에 외래어는 허용하면서도 왜 현대어의 모체인 옛말은 고어라는 가당찮은 이유로 배척하는가?


낙동강이던 두만강이던 상류에서 배를 띄우면 중류 하류를 거쳐 바다에 이르게 된다. 허나 시조라는 강은 상류서 배를 띄우면 중류도 가기 전에 무엇인가 턱하니 가로 막는다. 제팔 제가 흔들며 따로 따로 놀던 계파들이 안위를 보존하는 것에는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을 정도로 일치단결하여 댐을 훌륭하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땜으로 수로를 막아 놓고 돌아가며 보초를 서다가, 상류서 나 같이 덜떨어진 인간이 내려오면 자기네들이 만들어 놓은 수로에서(현대시조) 배를 띄워야 바다에(등단) 갈 수 있다 한다(등단이라 해 봐야 피라미들이 이나 탐낼까) 구경삼아 둘러보니 구닥다리 양수기가 "어메요 나 죽소" 가쁜 숨 토하며 빌빌빌 돌아가고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느티나무나 수양버들 등, 풍치는 땜 건설 때 팔아 처먹었는지 보이지 않고 물이라 해봐야 내가 타고 온 뗏목은커녕 가랑잎에 개미 몇 마리 태워 보내기도 벅찰 정도다.

왜 그들은 시조의 물줄기를 바꿔놓지 않으면 안 되었던가? 왜 그들은 푸루디 푸른 시조라는 강을 물고기 대가리 자르듯 잘라놓고 대가리는 고시조요, 몸통은 현대시조라 하는가? 대가리는(고시조) 맛없다 한사코 말리면서 몸통을(현대시조) 권하니 시조는 몰라도 어두일미는 알아 행여 나 모르게 자시려 하는 것은 아닐까?



촌놈이 풍월하니 눈꼴신가 양반네야
중놈이 퉁소불면 목탁소리 난다더냐
똥개야 짖지를 마라 낼 모래가 복날이다


"풍자시조는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후 쓰고, 남을 가르치는 식의 시조는 쓰지 마라" 왜 무명인은 풍자시조도 교훈적인 시조도 쓰지 말라는 것인가? 무명인은 사상도 심지어 영혼도 없다는 것인가? 시조 발전은 뒷전이고, 오직 친목을 도모하는데 앞 장서는 짓거리만 일삼는 그 잘난 시조계서 인정해 주어야 사상이 완성되고 영혼이 부여되는 것인가? 자수율을 무시한 사이비 것들은 똥통에 버리더라도 자수율을 지킨 것도 차마 시조라 할 수 없는 잡동사니에 불과했다.


"시조는 시가 될 수 있어도 시는 시조가 될 수 없다" 는 구절을 구태여 인용하지 않아도 현대시조시인들 실력으로는 골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단시조는커녕 풍자시조는 도저히 쓸 수 없다. 다시 말해 풍자시조는 누구나 함부로 넘볼 수 있는 노류장화가 아니라는 말이다

어떻게 된 노릇인지, 자기들 능력이 닿지 않는 것은 무조건 금기 사항에 들어있다.

"우노라, 없노라, 하노라, 찾노라, 우누나 " 등 고어를 쓰지 마라.
"주었관데, 보냈관데, 지노나니, 가렸관데 " 등 문어를 쓰지 마라.
"풍자시 쓰지 마라"
"교훈적인 시 쓰지 마라"
"어렵게 쓰지 마라"
"등단 전에는 아호를 사용하지 마라"
"고시조 풍으로 쓰지 마라 " 마라. 마라. 마라..........."

변변한 단시조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는 돌대가리들이 어떻게 그 많은 금지사항은 달달달 외우고 있는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시조의 시짜도 모르는 주제에 무슨 주문이 그리 많은지 가는 길 멈추고 시시비비를 아니 따질 수 없다. 되먹지 않은 짓거리지만 그래도 자기 딴에 가르쳐 주려하는데, 모른 척 지나가면 동방예의지국 백성이 아니지 암!


이렇게 기역잔가 저렇게 기역잔가
저 양반 꼴 안 베고 저물도록 씨름이라
두어라 이러 저런들 고기 썰 일 있더냐




수탉이 홰 처 울어 햇님은 불렀어도
까마귀 아니 울면 달님이 오실손가
서풍만 분다더이까 사공아 노 저어라


사이비 시조시인이건 얼뜨기 시조시인이건 간에 싸잡아 이르나니 시조에는 함부로 침범하지 못할 영역이 있다.
상기 풍자시조는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므로 해석하지 않겠다.



어버이 공양 않고 고려장 시킨 놈이
빈손들 차려 놓고 조문객 맞을 손가
탁주야 움막 지어라 삼년초토 치르리



고시조를 생매장한 현대시조의 무리들이 시조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참다운 시조인의 문상을 반기리, 힘이 미치지 못해 그들의 만행을 저지하지는 못했으나, 후손 된 도리로서 그리고 조상될 도리로서 삼년상을 치르리라.



선비들 울분 나면 자네를 출두시켜
동동주 밥알 돌 듯 곤장들 때렸는데
까막아 그리 당하고도 순장 않다 원망인가



현대시조에 의해 시조가 학살당하였으니, 옛시조서 동네북처럼 얻어맞던 까마귀도 원통해 하더라.


훈장이 서당개니 학동들 개소리라
앞 뒷산 토깽이야 너희들 큰일났다
올가미 피했다해도 사냥개들 피하리



시조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니 알려고 조차하지 않는 자들이 심사의원이요. 시조의 원로요. 지도자요. 대가로 군림하며 후학에게 사이비 시조를 가르치고 있으니 독자는 전멸할 수밖에 없다.



똥개가 먹을 갈고 서생원이 붓을 드니
암탉이 홰 처 울고 수탉이 알 까더라
바람아 사립문 닫아라 듣도 보도 않으리



글자 수만 맞추면 시조가 되는 줄 아는 얼치기도 시조시인요. 시조는커녕 자유시 잣대로 재어 봐도 수준이하의 것을 양산하는 들치기도 시조시인이라. 시조는 푸대접 받고 사이비시조가 시조대접을 받고 있으니, 이꼴 저꼴 추한 꼴을 어찌 보리까?



학 놀던 솔 나무에 송충이 노니나니
지킴이 청설모가 백송이라 하는 고야
그 뉘가 송화 가루 날려 백로를 부르리



학 놀던(시조시인 다운 시조인) 솔 나무에(시조) 송충이 노니나니(사이비시조.) 지킴이 청설모가(시조협회. 시조계 어르신네) 백송이라 하는 고야(송충이로 인해 솔 나무가 하얗게 시든 것을 현대시조라 한다.) 그 뉘가(송충이를 박멸하고 솔 나무를 살려 주는 이) 송화 가루 날려(詩調의 부활됨을 알려) 백로를 부르리(참다운 시조인을 부르리)



까마귀 둥지 틀 때 솔가지 한 몫 했고
다람쥐 배때지에 화살대는 대나무라
청솔은 푸르다 말고 청대는 곧다 말라


까마귀 둥지 틀 때(사이비시조. 얼치기 들치기 시조가 자리 잡을 때) 솔가지도 한 몫 했고(시조협회 시조인들) 다람쥐 배때지에(독자의 숨통을 끊어 놓은) 화살대는(시조를 죽인 것) 대나무라(얼치기 들치기 시조시인) 청솔은(시조협회) 푸르다 말고(시조는 우리 고유의 시다 떠벌리지 말고) 청대는(정격을 고수한다는 시조시인도) 곧다 말라(얼치기 들치기로 뽐내지 말라)



경치가 탐난다만 재주가 메주라서
길목을 가로막고 먹 갈고 있노메라
어느 손 지나가시다 담아 주지 않으리



발에 걸릴 정도로 시조시인은 많고 많으나, 자연을 담아 줄 시조시인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러나 언젠가 나타나지 않으리...



설화는 희다마다 동백꽃 붉다마다
정화수 맑다마다 농묵은(濃墨-) 검다마다
바람은 홀로 이나니 무엇보고 견 줄고



현대시조가 배척한 나의 시조와 견줄만한 현대시조는 나타나지 않았다.



잡풀만 무성하니 갓 걸릴 걱정 없고
이슬도 아니 달려 옷 버릴 염려 없다
좋은 손 갓 고쳐 쓰고 옷 빨 일은 없어라



자칭이건 타칭이건 현대시조에 대가라는 사람은 있으나, 어줍은 나의 시조에 대한 병폐를 일러 줄 사람이 없어 잔소리 듣지 않아 좋다. 이 아니 좋을시고...



고욤아 재지 마라 풍작이면 무엇하리
감일랑 너도 먹고 까치도 먹고 간다
놀부도 소출 없노라 장대 질도 않더라



고욤 일흔이 감 하나만 못하는 속담처럼 시조답지 않은 현대시조에 딱 맞는 말은 없을 것이다.



저 손들 짓거리가 바보보다 높단 말가
똥 된장 분간 못해 이놈 저놈 맛 보더니
얼씨구 망령났도다 똥통 지고 장에 간다.



똥을(결코 시조라 할 수 없는 것) 시조라고(된장) 끼리끼리 추켜세우더니, 똥통(시조가 아닌 것) 지고 장에 팔러 간다(국정 교과서에 실리는 것)



하늘에 손 벌리는 저 손은 누구인가
어허허 거지들이 똥개훈련 받는구나
출세라 물 건너가서 국제 거지 되었도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 하였다. 국내서도 대접받지 못하는 시조인데 가당찮게도 세계화를 외치고 있다.



종자를 아니 가니 해마다 굶는구나
주둥인 살쪘다만 빼때기 불쌍하다
망할 손 때꺼리 없는데 객까지 청하도다.



시조는 우리 고유 문학이다.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고 떠벌리는 시조시인들이 바로 시조를 학살하는 주범이니, 그야말로 경천동지 할 일이다. 시조의 정체성을 부정하면서까지 자유시를 쫓아가는 현대시조는 변변한 단시조 하나 없는 주제에 시조가 이렇니 저렇니 떠벌리며 독자를 청하고 있더라.



쭉정이 천 섬 여도 알곡 한 알 무겁더라
여보게 장에 간다 소 구루마 치우렸다
병아리 놀고 있더라 끌고 간들 어떠리



시조시인들 작품은 고시조에 비해 상당히 많으나 시조다운 시조는 찾아보기가 심히 어렵다. 시답잖은 것들을 시조라 명명한 자에게 이르나니, 독자를 호도 하지도 말고 각종 문예지를 더럽히지도 말라.



신춘문예
풍악이 요란하여 밥그릇 챙겼관데
흑싸리 껍데기가 곡간마다 가득터라
할배야 쇠죽만 끓이면 사람 배는 어쩌리



신춘문예 및 문예지를 통해 일 년에 수십 명의 현대시조시인이 탄생하지만 총탄자국도 없는 과녁에 구멍을 뚫어 놓고 십 점에 명중되었다며 호들갑 떠는 심사평만큼 세련된 작품은 접하지 못했다. 시조는 이론이 아니다. 이론은 구색을 갖추기 위한 것이지 본질이 아니다. 그리고 무릇 이론은 사상과 철학을 능가하지 못한다. 시조가 이론에 의해 완성될 성질의 것이라면 평론가나 문창과 교수는 이미 훌륭한 시조시인이 되어 있어야 한다. 시조보다 몇 수 아래 인 자유시 쪽을 보라. 대학에서 이론으로 무장한 이들이 매 년 수 없이 배출되지만 시인다운 시인도 탄생하지 않았고 작품다운 작품도 배출하지 못하였으니 그들 스스로가 시는 이론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겉만 뻔지레한 개살구 같은 평과 이론으로는 시조계가 유배시킨 독자의 죄를(?) 사면시킬 수 없다. 시조는 작자와 독자 간 감정의 교류가 이루어 졌을 때 비로써 완성되는 것이지 얼치기 시조에 들치기 평론가가 색동저고리를 입힌다 해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시조시인이란 명예도 도포도 갓도 아니다. 시조시인은 마음의 고향을 그리는 독자에게 망향가를 작사해 주어 독자 스스로가 작곡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할 책무가 있다. 흑싸리는 쇠여물로는 적합할지는 몰라도 사람이 먹을 것은 못 된다.




농 부
쭉정이 타작하여 밥 만들고 떡 만드니
허깨비 문전성시 자리다툼 치열한데
동짓달 雀서방들이 배꼽잡고 웃더라


(작) : 참새.


시조계는 휴지통에 들어 갈 휴지를 팔고 있다. 팔리겠는가? 불티나게 팔리겠는가 말이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업자들은(시조시인으로 등단하려는 자)소비자는(독자) 안중에 없고 오직 문단에 납품했다는 증명서를 발급 받고자 혈안이다.

바둑계는 실력이 없으면 등단은커녕 승급도 못한다. 만국병인 학연, 혈연, 지연은 바둑계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사과박스에 돈을 바리바리 담아 준다거나,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자라해도 실력이 없으면 등단하지 못한다. 시조계는 10급이 하루아침에 등단하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나 바둑계는 어림 반품 어치도 없으며 시조계처럼 기득권이 보호받는 일 따위도 없다. 바둑계서 등단하기란 시조계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다. 등단했어도 등단 전 보다 강도 높은 연마를 잠시라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바둑계 정상이 시조계처럼 안일하게 대처했다가는 하루아침에 퇴출된다. 바둑계 7급은 단과의 대국은커녕 3급에게도 천판 아니라 만판을 둬도 한판도 이길 수 없다. 그러나 시조계 단에는 10급 이하 짜리가 수두룩하여 아마추어 7급에게도 이긴다 장담 못한다. 시조계도 바둑계와 같이 생존경쟁의 법칙이 작용하지 않으면 발전하지 못한다.



이 슬
꽃가마 타 였어라 뽐내는 벗님네야
황천길 어깨동무 낙화이니 어쩌리
간밤에 부엉이 울어 장송곡도 없으리



시조를 쓰는 사람이라면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신춘문예로 화려하게 등단하고 싶어 한다. 허나 신춘문예로 화려하게 등단한 사람들 이름을 누가 기억하고 있으며 누가 기억시켜 줄 것인가? 새는 하루살이를 탐하지 않는다.




날지도 못할 것이 날개는 차지하고
머슴 놈 게으르다 목청 돋거 호통터냐
두어라 해 달아준들 참새처럼 날 손가



시조계는 해군이 미덥잖은가. 오늘도 해저 밑바닥에서 보초서고 있는 덕분에 요즘 무장공비가 바다로부터 침입했다는 뉴스를 들은 바 없다. 그나저나 상품이 팔리지 않으니 주식은 밑바닥이다. 조만간 자본 난에 봉착하면 "현대시조주식회사" 간판을 내려야 될지도 모른다. 경영진은 파산상태에 이르게 된 책임을 사원에게 전가했고 어느 돌파리가 개발품이라며 날라리 현대시조와 국적불명의 사이비 시조를 시장에 내어놓았으나 외면당하자 이번에는 수준이 맞지 않는다며 소비자를(독자) 나무란다.

식성은 하루아침에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소비자 식성에 맞는 음식을 식탁에 차려 놓지 않으면 안 된다. 독자가 알고 있는 시조가 과연 무엇인지 알고 있어야 하며, 나아가 시조가 쉬 변형될 성질의 것인가를 심사숙고했어야 옳았다. 섣부른 시험과 도전에 의해 생성된 삼각파도는 행한 자의 배만 파손시키는 것은 아니었기에 하는 말이다. 현대시조는 패배하였다. 전략전술도 주먹구구식이였고, 각 계파들이 거느린 오합지졸로는 독자를 정복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시조의 정체성을 부정하면서까지 시조의 틀을 파괴한 것이 패배의 주된 요인이었다.

시조계 경영진이라 할 수 있는 기라성 같은(?) 대선배님들에게 엎드려 간절히 바라오니, 제발 자비로 시조집을 출판하여 반기지 않는 이들에게도 우표에 알뜰히 침 붙여 가며 공짜로 돌리지 말 것이며, 시인이란 명함을 동네방네 뿌리고 다니는 것을 낙으로 삼지 마시옵고, 시조를 말아먹은 책임을 스스로 통감하시 와, 조용히 조용히 물러나소서, 패장은 전략 전술을 논하는 법이 아니라 하더이다.



백로를 보고자 재 넘어 왔소이다
잡초가 만발하니 풀벌레가 출세더라
솔 나무 심는 이 없으니 참새인들 오리까


시조는 제자리를 찾아가야 한다. 독자는 인위적 풀벌레 소리에 식상해 있다. 독자가 원하는 자연의 소리를 들려주기 위해서는 무성한 잡초를 뽑아 버리고 아름드리 나무 감을 심지 않으면 안 된다. 시조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 중 하나가, 접대성 평과 주례사 같은 평에 익숙해진 그들에게 느낌을 진솔하게 말해 주면 꺼리며 노한다는 점이다. 조사 하나 바꾸면 흐름이 보다 좋지 않을까 망설이다 최대한 예의를 갖춰 건넸다가 본전도 못 찾았다.

시조시인의 아집은 객관적이어야 한다, 뿌리없는 아집은 소중한 정보를 차단하는데 유용하게 작용한다. 작자의 시각이 때로는 독자보다 좁을 수도 있다. 대다수 시조사이트에는 접대성 글만 난무하지 동료애를 발휘하여 조언해 주는 곳은 보지 못했다. 작품을 발표하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모른다. 현대시조시인은 자신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 늪은 달콤한 아집과 교만과 허영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온천욕 즐기듯 즐기고 있다. 누군가 구원의 막대기를 건네 주면 나를 감히 어떻게 보고 허튼 수작이냐며 천둥보다 요란한 소리로 꾸짖는다. 그 짖은 나 또한 같다.

작자와 독자간의 동질감의 필요 요소는 경륜이나 널리 알려 진 이름에 의해서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인위적 아름다움은 자연의 웅장한 아름다움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이다. 시인은 태어나는 것이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시인으로 태어난 사람도 골백번 죽었다 깨어 난다해도 시를 완성시킬 수 없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다. 어줍은 이들에게 이르나니 현대시조시인랍시고 시조라는 기암괴석에 걸터앉아 도 닦는 척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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