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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석 (2007-02-15 20:47:52, Hit : 5668, Vote : 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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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신춘문예시조당선작 평.

서설(序說)
10개 신문사에서 주최한 2007년 신춘문예 시조당선작에서 시조라는 이름표를 달아 줄만한 작품은 없다. 아직 어리다기 보다 시조의 종자가 아니다. 시조의 꽃은 어디까지나 단시조이다. 신춘문예뿐만 아니라 연시조가 횡횡하는 것은 결코 이롭지 않다. 단시조로 단련된 사람조차도 감히 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연시조이다. 신춘문예 시조당선작 작자가 그 얼마나 단시조를 연마하고 감히 연시조에 도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언감생심이다.

매년 발표되는 신춘문예시조당선작을 접하면 현대시조의 정체가 참으로 아리송하고 목적하는 바가 무엇인지 심히 의심스럽다. 현대시조가 모체(고시조)를 부정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시조와는 코도 귀도 발가락도 어느 곳 하나 닮은 곳이라곤 없다. 피부색이 자유시와 닮았는데도 시조 족보에 올려져있으니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현대시조는 시조가 반듯이 갖추어야 할 어느 것 하나 마련하지 못했다. 더구나 시조와 자유시를 구별하는 잣대조차도 마련하지 못한 주제에 시조를 뽑는다는 것은 참으로 가소로운 짓이다. 갑오개혁 이후 서구에서 들어온 시의 기법과 정신에 영향을 받아 시조의 틀을 파괴한 신시조가 구동력을 상실한 현대시조를 언제까지 견인할 것인지 자못 흥미롭다.

류시화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이 시는 압축이 생명이다. 이야기를 지어내거나 생각나는 대로 글을 풀어 나가는 다른 문학과의 차별성이 거기에 있다. 시는 압축이고 생략한다. 말을 하다가 마는 것, 그것이 시의 특성이다” 하였다. 그러나 자유시에는 정답이겠지만, 시조에는 정답이 아니다. 인수분해를 배우기 전에 일이삼사부터 먼저 배우라는 차원에서 정답은 아니지만 굳이 차용하였다.

시조가 넘어야 할 산들은 참으로 험난하다. 자수와 음보와 구와 장이라는 강을 건너야 하고, 흐름이란 골을 지나, 촌철살인과 기승전결이란 산맥을 넘어야 한다. 단시조가 이러 할진데, 작금 발표되는 작품이나 신춘문예를 비롯하여 각종 의리의리한(?) 상에 선정된 시조는 거의가 연시조형식이다. 여기서 연시조형식이란 종장이 종장 역할을 하지 못하고 다음 연의 초장과 연결되매 연시조가 아니라는 말이다.

현대시조가 이렇듯 무엇 하나 장만한 것이 없으니, 현대시조가 모체이기를 부정하는 고시조 잣대로 재단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음보율이다. 반듯이 5자 이상이 되어야 하는 종장 2음보가 문제다. 왕왕 2개의 음보가 '종장 2음보'에서는 하나의 음보로 강제된다. 음보율이 정해지지 않았기에 타 음보가 출제한 문제도 종장 2음보의 문제와 같다.

음보율은 시비의 지뢰밭이다. 세부적으로 확고부동하게 음보율을 정한다는 것은 심히 어렵다. 대두되는 문제만 해도 띄어쓰기와 조사의 관계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이다. 음보율은 반듯이 풀어야 할 숙제이기에 시조시인이자 국어국문학과교수에게 문의하였더니 음보율을 논하려면 논문을 써야 할 정도라 한다. 아직 그 누구도 극히 기초적인 것마저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조를 논한다는 것은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꼴이라 하겠다.

3장을 모두 파괴한 부산일보 / 장작불과, 종장을 파괴한 서울신문 / 남해기행이, 장을 파괴한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 시조는 시조의 옷을 입어야 한다. 자유시 옷을 걸쳤다면 이유 불문하고 그것은 자유시이지 시조가 아니다. 무릇 장인정신은 세세한 곳 까지 미치는 것 처럼, 시조도 세세한 곳 까지 미쳐야 한다.

각설하고,
평자도 세부적으로 준비한 것은 없지만 고시조를 잣대로 2007년 신춘문예시조당선작을 살펴보겠다.


 2007년 신춘문예시조당선작 목차


  • 부산일보  장작불 (민달)                            심사위원 : 임종찬

  • 동아일보   눈은 길의 상처를 안다 (이민아)   심사위원 : 이근배

  • 중앙일보   사과를 만나다 (박연옥)              심사위원 : 유재영. 이한성. 김영재. 이정환. 이지엽. 정수자.

  • 국제신문  저울 (이광)                               심사위원 : 이근배. 이우걸.

  • 전북중앙   더덕 (박신양)                           심사위원 : 정순량

  • 조선일보   젖 물리는 여자 (노영임)             심사위원 : 이지엽

  • 대구매일   가면놀이 (이민아)                     심사위원 : 이정환

  • 경남신문   어떤 귀가 (김명희)                    심사위원 : 이우걸. 장성진.

  • 서울신문   남해기행 (이아영)                     심사위원 : 이근배. 한분순.

  • 농민신문  구석집 (김사계)                        심사위원 : 한분순. 문무학.

  • 강원일보  시조 폐지되고 시에 흡수.

 시조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흐름이다.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한 것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평자는 그것을 낱말퍼즐게임이라 칭 한다.

부산일보 / 장작불
1연 초장 : 궁핍한 땅 / 말뚝 박아 / 지열에 / 알고 나니
2연 초장 : 회붉은 / 목질부(木質部) // 너울진 / 꿈이 있어
2연 종장 : 한밤내 / 섣부른 불길 // 북천(北天)을 / 찾아 간다
3연 중장 : 동강난 / 불기둥 // 아직은 / 뭉근해도

중앙일보 / 사과를 만나다
2연 초장 : 떠난 자리 / 들어선 열매 // 뙤약볕에 / 담금질하고

전북중앙신문 / 더덕
1연 초장 : 노도처럼 / 밀려가는 // 지하철 / 환승 통로

경남신문 / 어떤 귀가
3연 초장 : 움츠린 / 어깨위에 / 지난날 꿈 / 아른거리고

대구매일 / 가면놀이
1연 중장 : 각시탈 / 연지곤지 // 낯붉히던 / 어린 시절은

조선일보 / 젖 물리는 여자
3연 초장 : 공갈빵처럼 / 부푼 가슴 // 아슬아슬한 / 실루엣
3연 중장 : 필라멘트 / 깜빡깜빡 // 전류를 / 방출하는
4연 초장 : 휘청, / 가는 허리 // 애기집 하나 / 못 얹어도
4연 종장 : 왜일까, / 늪에 빠지듯 // 지독한 허기 / 몰린다
5연 중장 : 빌렌도르프 / 비너스 // 따뜻한 // 양수의 기억

연시조는 각 연마다 하나의 독립된 단시조이어야 한다.
종장은 글자 그대로 終章인 것이다. 끝났다는 말이다. 현대시조의 연시조는 연이 다른 연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시조는 할 말만 한다. 다른 연을 붙잡고 잡다하게 수다를 떨거나 했던 말 또 하지는 않는다. 연시조는 고삐를 단 기관차가 아니다. 각기 달리는 자동차이다. 평자는 고삐를 단 기관차 같은 연시조는 연시조로 인정하지 않고 연시조형식이라 한다. 연시조형식이라는 것은 연시조가 아니라는 말이다. 고삐를 단 기관차와 같은 연시조형식을 가려 본다. (종장과 초장이 연결되는 것)

동아일보 / 장작불
3연 종장 : 살 끝은 화살 같아져 모서리가 서는데
4연 초장 : 결빙에 맞서왔던 삽날이 손을 펴고

중일일보 / 사과를 만나다.
1연 종장 : 받침이 집인 줄 모른 채 사과꽃은 지더니
2연 초장 : 떠난 자리 들어선 열매 뙤약볕에 담금질하고

2연 종장 : 모질게 견뎌온 나날 과즙으로 고이더니
3연 초장 : 끝내 그를 알고 안절부절 못하는 낯빛

대구매일 / 가면놀이
2연 종장 : 웃자란 새 각시 되어 붉은 입술 부딪히던
3연 초장 : 두 눈도 입도 코도 내 것이 아닌 듯 해

가면놀이는 4연인데, 작자는 1연에 1번 번호를 붙이고, 2연과 3연은 띄었으면서 2번으로 묶고 4연은 3번을 붙였다.
그것은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해괴한 일이다.


 구태여 종장 2음보를 5자 이상이라 한 것은, 타 음보는 5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종장 2음보 외, 타 음보가 5자 이상인 것을 추려 본다.

부산일보 / 장작불
1연 중장 : 계절을 / 뒤로하는 / 소소리 바람 / 산득하고

동아일보 / 눈은 길의 상처를 안다
4연 중장 : 쩌엉 쩡 / 회색하늘에 / 타전하는 / 모스부호

중앙일보 / 사과를 만나다
1연 중장 : 올핸 꼭 / 만나리라 // 서둘러 / 꽃 피워놓고
2연 초장 : 떠난 자리 / 들어선 열매 // 뙤약볕에 / 담금질하고
3연 초장 : 끝내 / 그를 알고 // 안절부절 / 못하는 낯빛
3연 종장 : 달디단 / 사과향 속으로 // 그림자 / 두엇 잠긴다

국제신문 / 저울
1연 중장 : 눈금 하나 / 사이에서 // 추를 / 살짝 멈추고

전북중앙신문 / 더덕
1연 중장 : 아련한 / 선율로 // 코 끝 간질이는 / 천연향
2연 초장 : 깊게 / 옹이진 가슴 // 실뿌리 / 촘촘히 뻗어
2연 중장 : 손 발 / 다 닳도록 // 안으로 / 쟁여온 세월
3연 중장 : 뭉툭한 / 손 마디 마디 // 가난 마저 / 물러서던


조선일보 / 젖 물리는 여자
1연 중장 : 어린 건 / 한껏 배불러 // 빨다가 / 조몰락대다
2연 초장 : 한길에는 / 늦게 깨어난 // 게으른 / 햇살들이
3연 초장 : 공갈빵처럼 / 부푼 가슴 // 아슬아슬한 / 실루엣
3연 종장 : 뾰족한 / 고욤 두 개가 // 손끝만 대도 / 터질듯
4연 초장 : 휘청, / 가는 허리 //  애기집 / 하나 못 얹어도
4연 중장 : 둥지 속 / 알 넘보듯 // 집요한 사내들의 / 눈 왜일까,
5연 초장 : 순환소수처럼 / 잇고 이어 // 사람에 / 사람을 낳은
5연 중장 : 빌렌도르프 / 비너스 // 따뜻한 / 양수의 기억
5연 종장 : 넉넉히 / 젖 물려주는 // 그런 여자가 / 그립다.

대구매일 / 가면놀이(작자가 단 번호 무시하고 연을 나눔)
2연 초장 : 미간도 / 맞지 않은 // 가면 뒤에서 / 숨을 쉬면
3연 중장 : 마당에 / 널브러지고 // 허방도 / 짚었던가
3연 종장 : 손쉬운 / 방백조차도 // 난청 속에 / 헤아렸었다.
4연 종장 : 바람의 / 유장한 지문 // 가만 / 엿듣고 있다.

경남신문 / 어떤 귀가
1연 초장 : 캄캄한 / 어둠이 // 오글거리는 / 골목길
3연 초장 : 움츠린 / 어깨위에 // 지난날 꿈 / 아른거리고
4연 중장 : 오늘도 / 기름 떼 낀 // 목수건 걸고 / 대문 연다

서울신문 / 남해기행 (연을 띄우지 않았기에 평자가 연을 분리함)
1연 초장 : 손에 묻은 / 모래알을 // 훌훌 / 털어내고 싶어
3연 중장 : 꿈을 / 잠재우는 // 파도와 / 마주서다 보면

농민신문 / 구석집
1연 초장 : 또 / 다녀갔나 보다 // 구석집 / 아들 내외.


1음보가 3자 미만 인 것.
중앙일보
/ 사과를 만나다
3연 초장 : 끝내 / 그를 알고 // 안절부절 / 못하는 낯빛
3연 중장 : 그걸 / 헤아린 듯 // 크게 한 입 / 베어 무니

전북중앙신문 / 더덕
2연 초장 : 깊게 / 옹이진 가슴 // 실뿌리 / 촘촘히 뻗어
2연 중장 : 손 발 / 다 닳도록 // 안으로 / 쟁여온 세월

조선일보 / 젖 물리는 여자
4연 초장 : 휘청, / 가는 허리 // 애기집 하나 / 못 얹어도

서울신문 / 남해기행
3연 중장 : 꿈을 / 잠재우는 // 파도와 / 마주서다 보면

농민신문 / 구석집
1연 초장 : / 다녀갔나 보다 // 구석집 / 아들 내외



 부산일보 장작불 / 민달            
 
1.
궁핍한 땅 말뚝 박아
지열(地熱)에 앓고 나니
 
계절을 뒤로하는
소소리 바람 산득하고
 
시나위
질펀한 곡조로
밑불을 토해 낸다
 
2.
회붉은 목질부(木質部)
너울진 꿈이 있어
 
겯고 트는 젖줄 위로
끔틀대는 봄배냇짓
 
한밤내
섣부른 불길
북천(北天)을 찾아 간다
 
3.
줄지은 산맥들
부푼 구름 보듬고
 
동강난 불기둥
아직은 뭉근해도
 
옹골질
맥박 이으며 우 적 우 적 타구나

 심사평 / 묘사보다 더한 것.
초심을 통과한 작품은 16편이었다. 다시 재심 끝에 '섬'(이광수) '차를 마시며'(박문숙) '홍옥'(한마루) '장작불'(민달) '담쟁이'(윤평수) '어떤 동행'(조춘희) '인생'(이상윤) '사북역에서'(정영화) '달팽이'(문경희) '해일'(배은상) 이렇게 10편으로 줄어들었다. 줄인 근거는 인생의 골똘한 의미를 담았느냐 아니면 사물의 묘사에 그쳤느냐 였다. 삼심은 무척 힘들었다. 그 나름대로 장점이 있는 작품들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종심에 잡힌 작품은 4편이었다.

'달팽이'는 살아 있는 언어가 마음에 들었으나 시조로서의 단련된 언어라는 점에서는 모자랐고,'장작불'은 민족의 아픔과 열망을 장작불을 통해 바라본 시점이 훌륭했으나 상징이 추상화된 흠이 있었다. '담쟁이'는 시심을 길게 이어가는 수법이 보통이 아니었지만 반대로 압축미가 모자랐다. '섬'은 딱히 흠을 잡기 어려웠으나 신인다운 티가 좀 모자랐다.

끝까지 선자를 괴롭힌 작품은 '장작불'과 '섬'이었다. 다 훌륭한 작품이지만 묘사보다는 시상(詩想),시상 그 너머 역사성에 가점을 주다 보니 '장작불'을 당선작으로 밀수밖에 없었다.
심사위원 : 임종찬(시조시인)

 一石의 평.
궁핍한 땅 / 말뚝 박아 회붉은 / 목질부는 어눌하다.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매우 무성의하게 보인다. 시조는 압축이기에 딱히 필요한 것만 담지 않으면 안 된다. 무성의는 결국 작자가 의도한대로 연시조형식이 될 수밖에 없었다. 3연으로 된 것을 단시조로 담을 수 있는 능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시조는 비유로 시작하여 비유로 끝난다. 말을 하듯, 보이는 것을 여과 없이 내뱉든 것은 시조가 될 수 없다. 봄배냇짓 같이 단 칼에 끊은 것은 초,중장 마지막 음보로도 적합하지 않지만 특히 종장 마지막 음보라면 대단히 곤란하다.

제목이 없으면 무슨 뜻인지 추적하기 어렵다. 고시조는 일목요연한 하나의 문장이고 메시지이기에 제목이 없어도 뜻이 불명한 것은 없었다. 구성이 산만하여 제목을 지팡이 삼아도 작자가 전하려는 메시지에 접근하기 어렵다.

3연 종장 3음보 우 적 우 적 처럼 글자를 한자 한자 띄워 한 몫 잡으려 해서는 안 된다. 글자를 한자 한자 띄우는 것보다 문장으로 충실해서야 옳았다. 기예와 기교는 구별하기가 심히 어렵다. 그러나 표 나는 기교라면 그것은 기교가 아니다. 스쳐 지나치는 것도 머리에 남는 것이 있고, 여러 번 정독해도 남는 것이 없는 것이 있다. 상기 작품은 후자에 속한다 하겠다. 시조는 시조의 옷을 입어야 한다. 구와 장을 파괴하였으니 누가 시조라 하겠는가?


  동아일보 눈은 길의 상처를 안다 / 이민아

무제치늪* 골짜기에 사나흘 내린 눈을
녹도록 기다리다 삽으로 밀어낸다
사라진 길을 찾으려 한삽 한삽 떠낸 눈
 
걷다가 밟힌 눈은 얼음이 되고 말아
숨소리 들려올까 생땅까지 찧어본다
삽날은 부싯돌 되어 번쩍이는 불꽃들

성글게 기워낸 길 간신히 닿으려나
내밀한 빙판 걷고 먼 설원 헤쳐가면
삽 끝은 화살 같아져 모서리가 서는데
 
결빙에 맞서왔던 삽날이 손을 펴고
쩌엉 쩡 회색하늘에 타전하는 모스부호
마침내 도려낸 상처 한땀 한땀 기워낸다

* 무제치늪 : 울산 울주군 삼동면 정족산(鼎足山)에 자리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층습원(高層濕原). 6000여 년 전 생성됐으며 지금도 수많은 습지 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심사평
땅속 깊이 뿌리박은 나무가 봄을 만나 꽃을 피우듯이 시조는 신춘문예를 만나 새 잎을 틔운다. 시조가 현대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난 지 100년을 맞은 지난해에는 모국어의 가락이 크게 소용돌이쳤다. 그런 까닭일까, 응모작들이 예년에 비해 형식과 내용의 각도에서 날을 세우고 있었다.
 
신춘문예를 의식한 소재와 주제를 다룬 작품들이 고른 수준을 유지하며 앞서 달려오고 있었으나 의욕과 실험정신을 완성도 높게 채우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또한 시조는 시각적 형식미에서 자유시와 식별시켜야 함에도 의도적으로 구와 장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는 표기법을 쓰는 유형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조가 자유시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형식의 파괴가 아니라 내재적 의미의 농축에 힘써야 하고, 글감잡기에서 형상화까지 치밀하게 결구(結構)해야 할 것이다.

당선작 ‘눈은 길의 상처를 안다’(이민아)는 순수한 원형을 지닌 눈이라는 오브제에서 상처를 만들고 그것을 도려내는 메스를 잡는 손이 능숙하다. 계절성을 띤 소재이면서 일상에서 끄집어내기 어려운 시의 줄기를 찾아가는 생각이 살아 있다. 명사 ‘삽’을 거듭 쓰는 것과 새맛내기가 덜한 점이 있으나 발상의 깊이가 있고 감성의 칼끝에 날이 서 있어 시조에 한 몫 하리라는 기대를 갖는다.
 
마지막까지 겨룬 작품으로 ‘무용총수렵도를 보며’(방승길), ‘신 공무도하가’(박채성) ‘탁본’(송은율) ‘그 겨울의 갯벌에서’(송유나), ‘숲과 그루터기’(설우근) 등이 숨 가쁘게 시조의 벽을 타고 넘고 있었으나 다음 기회로 넘겨지게 되었음을 밝힌다.
심사위원 : 이근배시조시인

 一石의 평.
종장은 글자 그대로 끝났다는 뜻이다. 2연과 3연의 종장이 다음 연 초장과 연결 된다. 종장은 '기승전결'에서 '결'이다. 작자가 매듭을 지어야 한다. 떠낸 눈 / 불꽃들 / 서는데는 종장 마지막 음보로는 맞지 않다. 시조는 촌철살인 되어야 한다. 연시조라고 촌철살인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종장을 맺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구성이 산만하여 다음 연으로 넘어 갈 때 마다, 먼저 지나간 앞의 연에서 생각나는 것은 없었다.

연시조는 감칠맛이 있어야 한다. 다음 연으로 넘어가도 앞의 연이 머리에 남아 있어야 한다. 그래서 연시조가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장은 하나의 문장이 되어야 한다.


  중앙일보 사과를 만나다 / 박연옥

길어야 일주일쯤 머무는 줄 미리 알아
올핸 꼭 만나리라 서둘러 꽃 피워놓고
받침이 집인 줄 모른 채 사과꽃은 지더니

떠난 자리 들어선 열매 뙤약볕에 담금질하고
비바람에 지는 벗들 가슴으로 배웅하며
모질게 견뎌온 나날 과즙으로 고이더니

끝내 그를 알고 안절부절 못하는 낯빛
그걸 헤아린 듯 크게 한 입 베어 무니
달디단 사과향 속으로 그림자 두엇 잠긴다

 심사평
신인문학상을 가리는데 올해도 치열한 논의를 거쳤다. 당선작 '사과를 만나다'는 따뜻한 관찰을 통한 시간의 육화가 일품이다. '받침이 집인 줄 모'르고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다시 앉아 '과즙으로' 고이는 과정이 사뭇 그윽하다. 시조 종장에서는 조심스러운 '지더니', '고이더니' 같은 결구도 셋째 수에서 효과적으로 수렴하고 있다. 다른 작품의 고른 수준과 종장 처리 능력이 평가에 한몫했음을 밝힌다.
 
이번 심사에서 특히 중시한 것은 미학적 완성도다. 참신성을 형식에 잘 앉히지 못할 경우, 이후의 작품이 흔들리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끝까지 논했던 김대룡.김주용.연선옥.임채성.정상혁.조은아 제씨는 이와 같은 이유로 순위에서 밀렸다. 이미지와 형식이 겉돌거나(김대룡. 김주용. 정상혁), 의미의 과잉(임채성) 혹은 공소한 내용(연선옥. 조은아) 등이 지적되었음을 덧붙인다. 더 좋은 작품으로 만나게 될 것을 믿는다.
심사위원 : 유재영. 이한성. 김영재. 이정환. 이지엽. 정수자
 
 一石의 평.
1연, 2연 종장이 다음 초장과 연결된다. 종장에 관해 앞에 작품 동아일보 / 눈은 길의 상처를 안다에서 피력하였으므로 생략한다. 상기 작품도 자유시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 글자 수만 맞춘다고 시조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글자 수는 초등학생도 맞출 수 있다. 시조는 일목요연한 하나의 문장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A를 A로 말하지 않는다. 즉  B를 빌려 A를 말한다. 시조를 짓기 전에 시조와 자유시가 내외적으로 무엇이 틀리는가를 먼저 배웠으면 한다.


  국제신문 저울 / 이광

달아보면 느껴지는 저마다 지닌 무게
눈금 하나 사이에서 추를 살짝 멈추고
평형을 이루어내던 대저울이 생각난다
 
한 걸음 물러서면 한 쪽으로 쏠리고
괜한 욕심 앞세우다 흔들리어 떠는 몸짓
눈앞에 그려보고도 어긋나는 평형의 길

하루 가면 하루치 빚을 지고 돌아와
그 무게에 비스듬히 기울어진 생의 저울
언제쯤 수평에 서서 저 해넘이 바라보랴

 심사평 진솔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사유 돋보여
좋은 시조는 어떤 모습일까? 심사를 할 때마다 새삼스럽게 이 질문을 먼저 떠 올린다. 정형시인 시조는 물론 그 형식을 잘 소화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런 공정 자체가 언어를 시적으로 극화시키는 적절한 압축과 긴장의 아름다움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리고 시대를 투시하는 예리한 시인의 눈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신춘문예의 경우 하나 더 욕심을 낸다면 참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대를 가지고 수백 편의 응모작을 조심 조심 정독해 갔다.
 
대체로 시조 형식을 모르는 응모자는 없었다. 수준도 예년에 비해 높은 편이었다. 그러나 시상이나 어법이 지나치게 평이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지막까지 선자의 관심을 끈 것은 '숭어 뜀을 담아오다', '프리즈 프레임', '판자촌 봄비', '저울' 등이었다.
'숭어뜀을 담아오다'의 경우 리듬이 살아 있고 이미지가 참신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울림이 없다는 점이 적지 않은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프리즈 프레임'의 경우 시상이 자유롭고 기법 또한 참신했다. 그러나 전통시조 작법에서 바라보면 지나치게 이탈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낳게 했다. 언어의 밀도, 시상의 구체성 면에서도 아쉬움이 있었다.
 
'판자촌의 봄비'의 경우 시조를 잘 알고 습작한 경험이 오랜 시인의 작품으로 읽혔다. 그럼에도 지나치게 소박한 시상과 긴장감 부족이 흠이었다. 결국 올해의 영광은 '저울'의 작가 이광 시인에게 돌아갔다. 이 시인의 장점은 시상의 진솔성과 결코 가볍지 않은 시적 사유의 깊이에 있다. 함께 응모한 다른 작품들이 보여주는 공통점은 한결같이 생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빚어낸 만만치 않은 작품이라는 것이다.
 
부분 부분 지나치게 비시적이거나 다른 시인의 그림자 같은 것이 있고 회고조의 정서도 노출된다. 그런 면에서 비교적 완성도가 높은 '저울'을 내세우기로 했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제재지만 쉽게 성공하기 어려운 것이 '저울'이다. 앞서 거론한 바와 같이 오랜 시적 수련과 사유의 깊이가 인생론적 의미를 띤 울림 있는 작품으로 빚어놓았다. 참신하지 않다는 흠이 있지만 신뢰가 가는 시인의 탄생을 축하하지 않을 수 없다. 대성을 빈다.
심사위원 : 이근배. 이우걸(시조시인)
 
 一石의 평.
2007년 신춘문예 당선작은 시조사랑에서 퍼 왔다.
2연 중장 괜한 욕심 / 앞세우다 // 흔들리어 / 떠는 몸짓이 잘못되었는가 해서 국제신문을 검색하니 맞다.
괜한 욕심 / 앞세우다 // 흔들리어 / 떠는 몸짓 보다
괜한 욕심 / 앞세우다 // 흔들리며 / 떠는 몸짓 의 흐름이 자연스럽다.

대체로 흐름은 무난하나 1연 초장 달아보면 / 느껴지는 // 저마다 / 지닌 무게 처럼 모든 장이 평범하다.
시조라는 마차는 준마가 끌 수 있는 것이지 조랑말이 끌 수 있을 만큼 그리 가벼운 것은 아니다.
 

  전북중앙신문 더덕 / 박신양
 
노도처럼 밀려가는 지하철 환승 통로
아련한 선율로 코 끝 간질이는 천연향
오석에 물이 스미듯 촉촉하게 젖어든다

깊게 옹이진 가슴 실뿌리 촘촘히 뻗어
손 발 다 닳도록 안으로 쟁여온 세월
주름살 월계관인가 설움인양 둘려 있다
 
맨손으로 일궈 온 아버님의 칠십 생애
뭉툭한 손 마디 마디 가난 마저 물러서던
때늦은 저녁 밥상에 더덕향이 넘쳐 난다

 심사평
전북지역에서 오직 하나 신춘문예 시조장르를 유지할 수 있어 감사하게 생각한다. 현대시조의 태두이신 가람 이병기 선생님의 전통적인 시조의 틀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제재를 찾아내어 시어를 아껴 함축과 정제가 잘 이루어졌는지를 살펴보았다. 124편의 응모작품을 일독하면서 9명을 선별하고, 이들의 작품을 정독하면서 13편을 뽑은 후 최종적으로 3편의 작품을 견주어보며 고심하다가 박선양님의 ‘더덕’을 당선작으로 밀게 되었다. 참신함이 돋보이는 실험적 작품이 없어 아쉬웠으나 응모작품의 수준은 희망적이었다.
 
박신산님의 ‘지리산 벽소령’은 6.25동란을 겪으면서 이념 때문에 동포끼리 총을 겨눠 씻을 수 없는 상흔을 남긴 곳으로 “죽어서 북으로 간 바람 버섯구름 피우지 마라”며 오늘의 남과 북 얘기를 담고 있다. 김형태님의 ‘담쟁이덩굴의 사랑’은 장애인 부부가 서로 돕고 사는 애틋한 사랑을 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덩굴로 상징화하여 꾸밈없는 시어로 쓴 순애보로서 감동을 준다. 박신양님의 ‘더덕’은 가시적인 평범한 이미지 속에 힘겹게 살아온 아버지에 대한 애정과 아련한 모습이 숨겨져 있다. “손발 다 닳도록 안으로 쟁여온 세월/ 주름살 월계관인가 설움인양 둘려있다”. 말도 안 되는 조어로 글자 맞춘 게 아니라 일상 언어에 남다른 상상력과 직관에 의해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내었고, 내재된 리듬과 율격이 자연스러웠다.
 
끝으로 고등학생 신분으로 응모한 서상희양은 시조라는 그릇에 아름답고 맛깔스러운 음식을 담을 수 있는 조리사로서의 재능이 엿보였다. 좀 더 수련하여 이름을 떨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 정순량 시조시인(우석대 명예교수)
 
 一石의 평.
곳곳에 낱말퍼즐게임 같은 것이 도사리고 있다. 낱말퍼즐게임 같은 것은 흐름을 방해하는 장애물과 같다. 자유시 그늘을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였기에 시조로 보고 평하라면 평할 것이 없다.
 

  조선일보 젖 물리는 여자 / 노영임
 
뜨건 국밥 후후 불며 젖 물리고 앉은 여자
어린 건 한껏 배불러 빨다가 조몰락대다
꽉 쥐고 해살거리며 또글또글 웃는다

한길에는 늦게 깨어난 게으른 햇살들이
엉덩이를 흔들며 사뿐사뿐 걸어가는
살짝 휜 S라인 여자들 발꿈치를 좇고 있다.
 
공갈빵처럼 부푼 가슴 아슬아슬한 실루엣
필라멘트 깜빡깜빡 전류를 방출하는
뾰족한 고욤 두 개가 손끝만 대도 터질듯
 
휘청, 가는 허리 애기집 하나 못 얹어도
둥지 속 알 넘보듯 집요한 사내들의 눈 왜일까,
늪에 빠지듯 지독한 허기 몰린다
 
순환소수처럼 잇고 이어 사람에 사람을 낳은
빌렌도르프 비너스 따뜻한 양수의 기억
넉넉히 젖 물려주는 그런 여자가 그립다.

 심사평 현대의 잘못된 여성상 3 묘사 빼어나,
응모된 작품을 정독하면서 금년 들어 새롭게 일어난 변화가 주목되었다. 새로운 시어를 찾아 쓰려는 노력, 시조의 장 구분 등에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 적지 않은 사설시조 작품들이 창작되고 있다는 점 등이 바로 그것이다.

마지막까지 선자의 손을 떠나지 않았던 작품들은 ‘둥지 잃은 새’ ‘자전거의 독백’ ‘냉이꽃’ ‘밤낚시’ ‘이상한 나무’ ‘빛깔’ 등이었다. 이 작품들은 모두가 상당한 수련을 거친 솜씨여서 옥석을 가린다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았다. 그러나 이들 작품들은 관념이 잘 육화(肉化)되지 못하거나, 종장에서 시적 긴장감을 풀어버리거나, 작품이 갖는 의미가 미약하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당선작으로 택한 노영임의 ‘젖 물리는 여자’는 외모 중시의 덫에 치여 점점 나약해져가고 있는 현대의 잘못된 여성상에 일침을 가하고 있는 의미 있는 작품이다. 동시에 시상을 잡아나가는 구성과 묘사가 빼어나다. 같이 응모한 작품들도 모두 정제된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신뢰를 얹을 만하였다. 특히 전통을 재해석한 ‘쌍화점’과 생태 사설시조라 할 만한 ‘북새통 났네’는 소재의 다양한 운용과 단단한 기량을 짐작케 한다. 늘 문제의식을 가지고 정진해 좋은 시인이 되길 바란다.
심사위원 : 이지엽시인
 
 一石의 평.
     평 불가.
 
 
  대구매일 가면놀이 / 이민아
 
1
이삿짐 꾸리다가 담지 못한 소품 하나
각시탈 연지곤지 낯붉히던 어린 시절은
내 생애 최초의 극장 눈물어린 퍼소나다.

2
미간도 맞지 않은 가면 뒤에서 숨을 쉬면
얼굴과 얼굴 사이 맺히는 눈물방울들,
웃자란 새 각시 되어 붉은 입술 부딪히던
 
두 눈도 입도 코도 내 것이 아닌 듯 해
마당에 널브러지고 허방도 짚었던가
손쉬운 방백조차도 난청 속에 헤아렸었다.

3
걸립에 열뜬 이마 푸르게 서는 핏발
혼미한 정신의 틈 한바탕 뒤흔들며
바람의 유장한 지문 가만 엿듣고 있다.

 심사평
신인에게 요구되는 덕목 중에 참신성과 패기를 들 수 있다. 삶의 의미를 확장·심화시키는 당찬 시선과 기량을 보이지 않는다면 눈길을 끌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3장 6구 12음보의 시조는 정형의 율격에 시상을 잘 녹여 담아야 하는 겹의 창작 과정을 거쳐야 하며, 형식에 충실하되 거기에 얽매이지 않는 활달한 언어 운용의 묘미를 체득해야 한다. 그러므로 한 편의 시조 속에 자연스러움이라는 요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공정과 천착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선작인 이민아의 '가면놀이'는 가면놀이라는 비근한 소재를 원용하여 실감실정을 살려 인생의 의미를 성찰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어떤 측면에서 볼 때는 보이지 않는 탈을 쓰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사람살이다. 자아의 진면목을 깊숙이 숨기고, 또 다른 나를 전면에 내세워 세상과 부딪칠 때가 적지 않은 것이다. 이 시는 시종 잔잔한 어조로 그런 이면의 세계를 육화하여 보여주고 있는 점에서 이채롭다. 다소 난해한 마무리 부분도 깊은 울림과 시적 묘미를 내장하고 있어 그 의미를 여러 번 곱씹어 되뇌게 한다.
 
최종심에서 김종학, 이효정, 장중식, 김지송 등의 작품이 눈에 띄었으나, 몇 가지 문제점을 극복하지 못하여 당선권에서 밀려났다. 즉 편편이 완성도를 보인 반면에 소재가 회고적인 자연 경물 묘사에 머물거나, 신인으로서 패기와 기량의 부족하거나, 형상능력은 엿보이나 지나친 실험성과 파격으로 신뢰가 가지 않는 점 등이었다. 새 물꼬를 트는 각고의 노력이 가일층 뒤따라야 할 것이다. 새로운 신인의 등장을 축하하며, 오늘의 영광에 값하는 꾸준한 정진을 보여주기 바란다.
심사위원 : 이정환(시조시인)
 
 一石의 평.
4연으로 된 연시조형식이 아니 였던가?
2연과 3연을 묶어 숫자로 표시하였으니, 이런 연시조형시도 있었던가?
숫자를 무시하고,
2연 종장이 3연 초장과 연결된다. 작자는 종장은 받듯이 끝을 맺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고는 2연과 3연을 하나의 숫자로 묶을 이유가 없다. 퍼소나다를 “퍼소나“ ”퍼서나다“로 사전을 뒤져 봐도 없으니 무슨 뜻인지 도통 모르겠다. 영어 인가? 상기 작품도 내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을 갖추지 못하였다. 이것이 바로 현대시조의 현주소인가?


  경남신문 어떤 귀가 / 김명희
 
캄캄한 어둠이 오글거리는 골목길
야트막한 대문 새로 삐져나온 엷은 불빛
아이들 수군거리는 창밑마다 찾아든 별
 
깎아지른 언덕길을 막 올라선 발걸음이
거친 숨 몰아쉬고 담벼락에 기대서면
찬바람 쏘아붙이듯 귓불 치고 달아난다
 
움츠린 어깨위에 지난날 꿈 아른거리고
젊은 시절 당당했던 목소린 작아졌다
기대설 누군가 있다면 짊어진 짐 놓고 싶다
 
돌아갈 집이 있어 기다려줄 아이 있어
오늘도 기름 떼 낀 목수건 걸고 대문 연다
거머쥔 붕어빵 봉투 인생 줄에 매달렸다

 심사평 허점 없는 언어 밀도 돋보여
우리는 모국어의 새로운 발성법을 지닌 시인을 만나고 싶었다. 그 발성법이란 소재의 확장. 깊이있는 사유의 천착. 참신한 언어감각에 의해 드러나는 치열하고 당돌한 개성을 말함은 물론이다.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는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남아서 선자들을 고심케 한 작품은 ‘봄비’. ‘레이스를 짜는 여자’. ‘어떤 귀가’였다. ‘봄비’는 아름다운 서정시일 뿐 아니라 시조의 율감을 적절히 살릴 줄 아는 시인의 작품으로 무리없이 읽혔다. 그러나 도발적인 혹은 치열한 작가정신을 감지하기 어려웠다. 지나치게 무난하다는 것은 결국 지나치게 안이하다는 것이고 이 점이 신인의 자격으로는 적지않은 결함이라 생각했다. ‘레이스를 짜는 여자’의 경우는 우선 참신성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제목이 그랬고 베르메르의 그림을 소재로 원용한 것도 그런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정형시에서 특별한 이유없는 동어반복은 치명적인 약점으로 보였다. 그러한 약점은 상의 불분명함과 함께 습작기간의 부족으로 다가왔다. 강파른 현실의 단면을 은유적으로 그려내고 싶은 작자의 의도에 비해 그 구성이 지나치게 서투르다는 것이 선자의 공통된 견해였다. 이런 결함을 극복한다면 좋은 시인이 될 것으로 보였다.
 
올 해의 행운은 결국 ‘어떤 귀가’에 닿았다. ‘어떤 귀가’는 적지않은 미덕을 지니고 있었다. 우선 이 시인의 응모작 모두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특히 비교적 호흡이 긴 연시조들도 쉽게 허점을 드러내지 않는 언어 밀도를 보였다. 아울러 어떤 제재를 가지고도 시조를 빚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저력을 감지하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인의 작품을 선택할 때까지 우리를 괴롭혔던 것은 새롭지 않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신년 초에 독자에게 찾아갈 신춘문예 작품이라면 신선함이 중요한 미덕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기준에서 본다면 분명 빗나간 낙점이다. 그러나 시조를 빚기 위해 쌓아온 내공이 역력히 드러나는 믿음직한 작자를 천거한다는 것 또한 작은 기쁨이 아니다. 하루의 영광 뒤에 쉽게 사라지는 많은 당선자들을 생각할 때 더욱 그러하다는 확신으로 이 시인을 민다. 이제 더 새로운 작품으로 선자의 우려를 불식시켜 대성하길 당부하며 축하를 보낸다.
심사위원: 이우걸. 장성진.
 
 一石의 평.
찾아든 별은 종장 마지막 음보로는 맞지 않다. 시조는 종장 마지막 음보에는 적합한 말을 써야만 한다. 종장 특히 마지막 구는 시조에 있어 화룡점정이고 氣인 것이다. 내용이 평범하여 딱히 시조라 하기 어렵다. 앞의 작품과 대동소이하므로 이하 생략한다.
 

  서울신문 남해기행 / 이아영
 
손에 묻은 모래알을 훌훌 털어내고 싶어
바다에 나와서면 먼 기억들이 달려오고
가슴은 빈 바람 소리로
동굴 하나 만든다.
지나온 발자국들 돌아보면 또 묻히고
갈매기 흰 울음이 저녁놀에 잠겨들면
달 하나 키우고 싶은
섬이 하나 솟는다.
물때에 부대끼는 서러운 몸짓으로
꿈을 잠재우는 파도와 마주서다 보면
일몰은 또 하나의 탄생
산이 나를 맞는다.

 심사평 세밀한 관찰로 이미지 표출
시조는 우리말이 갖고 있는 가락을 가장 잘 살려낼 수 있는 장르이다. 이번 신춘문예에 응모한 작품들은 신인다운 패기와 참신성을 보여준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예년에 비해 편수도 늘었고 응모작 수준도 높았다. 그러나 어떤 아류에 휩쓸린 경향에 만연되어 있거나 이름을 가리고 보면 똑같은 톤과 연결하는 법이 동일한 경우의 작품들도 만날 수 있었음은 문제로 지적되었다.
 
당선작 이아영의 ‘남해기행’은 삶의 현실에서 내다보는 희망과 자연과의 호흡, 숨결이 피부에 와 닿는 작품이다. 기행이라고 해서 표면에 나타 난 사물 그대로만을 묘사하지 않고 세밀한 관찰을 통해 내면의 이미지로 표출해낸 감성적인 작법이 뛰어났다.

최종심에 오른 이태호의 ‘지리산에 들다’는 작품을 다루는 솜씨가 만만치 않았음에도 표현 형식에서 시조의 형식미를 살려주었으면 하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의도적으로 3장6구 형식을 분할하더라도 시각적으로 시조의 특징을 살렸더라면 당선권에 들었을 것이다. 김종학의 ‘물밀어오는 뜨락’은 작품을 갈고 닦은 노련함이 엿보이나 진실성과 메시지 전달이 부각되었으면 하는 점, 말의 치장이 필요 이상 과한 점이 아쉬웠다. 연선옥의 ‘그 숲에 들면’은 시적 대상에서 바깥 세계와의 폭넓은 시야나 통로를 마련했더라면 한결 우수한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숲 안에서만 안주한 점이 당선권에서 멀어지게 했다.
심사위원 : 이근배. 한분순.
 
 一石의 평.
 장을 파괴한 것도 마음에 차지 않았는지 연마저 붙여 놓았다. 작자가 자유시로 봐 달라는 의도 같아 굳이 평하지 않겠다.


  농민신문 구석집-김사계
 
또 다녀갔나 보다 구석집 아들 내외
눈 어두신 할머니 삼십촉 등 켜시면
그 소식 궁금한 마을 길어지는 시골밤
 
남은 건 두 마지기 비탈진 감자밭뿐
말없는 노안 속에 좁아지신 마음이
남의 말 일축하시듯 어두운 등 끄신다
 
새벽잠 대신하여 켜 놓은 텔레비전
자고 나면 평당 가격 수백씩 오른다는
도회지 삶터 값들을 며칠째 쏟아 낸다

 심사평 “빼어난 종장 처리, 현실감 생생 ”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아홉사람의 48편이었다. 단수로만 응모한 사람도 있었고 연시조, 혼합연형시조 등 시조의 다양한 형식을 활용한 작품들이었다. 응모자들이 시조를 다루는 솜씨들이 여간 아니었다. 따라서 시조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가져도 좋겠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이 작품들을 두고 심사위원들은 시조 창작에서는 시조의 형식을 다루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이 점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 작품의 완성도에 주목하기로 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두 개의 달력〉〈구석집〉〈그 겨울, 갯벌〉〈울 할매 젖〉등의 작품을 두고 논의를 거듭했다.
 
그 결과 작품 〈구석집〉을 당선작으로 뽑았다.〈구석집〉은 농촌 현실과 홀로 사는 노인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었으며, 특히 시조의 형식 활용에서 종장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잘 살려낸 것은 압권이었다. 그리고 압축과 생략으로 할 말을 다 하면서도 말을 줄이는 능력을 높이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작품 외에 함께 응모한 작품들에서도 당선작에서 보인 미덕을 살리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개인적 서정에 머물지 않고 시야가 넓은 점, 회고조에 기대지 않고 현장성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 등을 높이 샀다.
 
본심에 오른 다른 응모자의 작품들도 시조의 형식을 잘 이해하고 형식미를 살려내고 있었으나 조금씩의 아쉬움이 남는 작품들이었다. 다음 기회를 기대하면서 창작의 열정을 불태우길 바란다.
심사위원 : 한분순. 문무학.
 
 一石의 평.
또 다녀갔나 보다 구석집 아들 내외를 음보로 나눔에 있어
또 다녀갔나 / 보다 // 구석집 / 아들 내외 이렇게 나눌 수가 없어,
또 / 다녀갔나 보다 // 구석집 / 아들 내외 부득불 이렇게 나누 었다.
음보를 나눔에 있어 딱히 전문가만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음보를 나눔에 있어 곤란을 느끼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음보율도 중구난방이더니, 드디어 한 자짜리 음보가 등장하였다.
 
눈 어두신 / 할머니 // 삼십촉 / 등 켜시면,
눈 어두신 / 할머니에서 눈 어두신은 중복이다. 독자가 쉬 연상할 수 있는 것은 버려야 한다. 아무거나 담을 수 있을 정도로 시조의 그릇은 그리 크지 않다. 시골밤은 종장 마지막 음보로는 맞지 않다. 상기 작품은 시조가 아니고 그렇고 그런 글 수준에 불과하다.


  종합 평.(一石)

신춘문예시조당선작조차도 시조가 죽었다는 사실을 재삼 확인시켜 주었다.
관객 없는 무대건만 딱히 주연을 뽑아서 무엇 하면, 내일이 없는 명성은 어디다 쓰리...

시조는 역사와 사회상의 기록이다. 작자가 자신의 내면세계를 기록한 것도 그 시대 사회상이 묻어 있다. 기록은 정제된 일목요연한 문장을 요구한다. 그것이 바로 시조인 것이다. 보이는 것이나 느낀 것을 정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담았다면 그것은 시조는커녕 시도 아니다.

한 가마 쌀을 하나의 작은 홉에 담을 수 없다. 한가마니 쌀은 10말이요. 한말은 10되요. 한 되는 10홉이다. 한가마니를 홉으로 환산하면 1,000홉이다. 말통으로도 한가마니 쌀을 담지 못하는데, 홉에 담는 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담을 수 있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시조라는 홉인 것이다.

한가마니 쌀을 홉에 담기 위해서는 쌀을 압축하지 않으면 안 되다. 그러면 시조라는 홉이 보유하고 있는 능력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비유인 것이다. 비유와 비유의 틈새는 비유가 생성한 연상되는 것으로 채워진다. 음보와 음보, 구와 구, 장과 장은 서로를 보완하고 유기성을 유지하여야만 한가마니 쌀을 하나의 작은 홉에 담을 수 있는 것이다.

2007년 신춘문예시조당선작뿐만 아니라 현대시조라 일컬어지는 것들은 시조가 아니다. 신춘문예시조당선작 수준의 작품은 지천에 널려 있다. 지천에 널려 있다는 것은 누구나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평자는 "짓다"라 하지 않고 "쓴다"고 했다. 시조는 짓는 것이고, 글은 쓰는 것이다. 

2007년 조선일보신춘문예시조당선작은 시조가 어디까지 망가졌는가를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조선일보 / 젖 물리는 여자는 시조는커녕 자유시 근처에도 접근하지 못한 작품이기에 평 할 수 없었다.
이참에, 사설시조와 자유시를 구별할 수 있는 잣대가 무엇인지 조선일보 심사위원에게 묻고 싶다.
참으로 한심스러운 일이다.


2007년 조선일보신춘문예시조당선작 / 젖 물리는 여자

3연
휘청, 가는 허리 애기집 하나 못 얹어도
둥지 속 알 넘보듯 집요한 사내들의 눈 왜일까,
늪에 빠지듯 지독한 허기 몰린다

초장은 음보를 나누기가 심히 어렵다.
휘청,/ 가는 허리 // 애기집 하나 / 못 얹어도
휘청,/ 가는 허리 // 애기집 / 하나 / 못 얹어도
휘청,/ 가는 허리 // 애기집 / 하나 못 얹어도

중장도 마찬 가지다.
둥지 속 / 알 넘보듯 // 집요한 사내들의 / 눈 왜일까,
둥지 속 / 알 넘보듯 // 집요한 / 사내들의 눈 / 왜일까,
둥지 속 / 알 넘보듯 // 집요한 / 사내들의 눈 / 왜일까,

평자를 실의로 인도한 한 종장을 보자.
늪에 / 빠지듯 // 지독한 허기 / 몰린다
반듯이 3자와 5자 이상이 되어야 하는 1음보와 2음보가 2자와 3자이다.
내용도 진부하지만 상기 종장에서 발생한 중대한 하자로 인해 평하지 않았다.
상기 작품은 시조사랑에서 퍼 왔기에 퍼 나르는 과정에서 하자가 발생했나 싶어 조선일보서 확인하였더니 틀린 곳은 없었다.

작품을 훼손해서는 안 되지만, 문제가 된 3연을 평자가 임으로 조작해 보았다.

휘청, 가는 허리 애기집 하나 못 얹어도
둥지 속 알 넘보듯 집요한 사내들의 눈
왜일까, / 늪에 빠지듯 // 지독한 허기 / 몰린다

중장 마지막 음보에 있던 왜일까를 초장 첫 음보로 옮기니 음보가 맞다.

심사자는 작품을 훼손하거나 평자처럼 임의로 조작해서는 안 된다. 있는 그대로 본다면 상기 작품은 시조 근처에도 못 간다. 심사위원이 평자처럼 임의로 조작하여 음보율이 맞는 것으로 간주하였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나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어도 되는 것으로 되었다. 드디어 불가사의 한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조선일보 2007년 신춘문예시조당선작 / 젖 물리는 여자



이슬
꽃가마 타 였서라 뽐내는 벗님네야
황천길 어깨동무 낙화이니 어쩌리
간밤에 부엉이 울어 장송곡도 없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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