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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자 (2007-01-29 18:51:02, Hit : 5492, Vote :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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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호 교수 석궁 사건에 대한 두 견해2.- 탈락의 추억, 그리고 야만의 현실 /염무웅 교수
탈락의 추억, 그리고 야만의 현실

                                 영남대학교 염무웅 교수

주류언론들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석궁 테러’로 명명된 김명호 교수 사건은 우리가 지금 어떤 종류의 사회에 살고 있는지, 그리고 이런 사회에 대한 지식인의 처신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관한 근본적 질문으로서 우리 모두를 양심의 시험대 위에 세우고 있다. 나는 지난 1월 18일자 <다산포럼> 249호 정지창 교수의 글에 전적으로 공감하면서, 다만 사안의 중대성에 비추어 더 많은 사람들이 여러 다른 각도에서 이 사건을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내 소회를 덧붙이려고 한다.

잘 알려진 대로 사건의 발단은 1995년 1월 성균관대 입시 본고사 채점시 김명호 교수가 수학문제의 오류를 지적한 것이었다. 그 수학문제가 오류인지 아닌지, 또 어느 수준의 것인지 나 같은 사람은 조금도 판별할 능력이 없다. 그러나 공공연하게 오류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리고 국내 수학교수 189명이 김 교수의 이의제기를 지지했고 국제적인 외국 학술지들도 김 교수를 옹호한 것으로 미루어 그 수학문제가 오류임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런데도 대입 지원자가 풀 만한 수준의 문제를 잘못 출제한 교수는 어떤 문책을 받았는지 알려진 바 없는 반면에, 김 교수는 이듬해 ‘해교행위’ ‘연구실적 부진’ 등의 이유로 재임용에서 탈락하여 교수직을 잃고 말았다.



박정희정권이 도입한 교수재임용제, 사학재단이 적극 확용(?)

여기까지가 사건의 제1막이다. 돌이켜보면 박정희 정권이 관계법령의 개정을 통해 교수재임용제를 공식적으로 대학사회에 도입한 것은 1975년이다. 정부가 겉으로 내세운 명분은 뭔가 있었지만, 진짜 목적은 지식인들의 유신체제 비판을 억압하고 교수들의 언로를 봉쇄하기 위해서였음을 누구나 짐작하고 있었다.

당시 서울의 어느 대학에 재직하고 있던 나는 그해 12월 초 무슨 일로 남산(중앙정보부) 지하실에 잡혀가 1주일쯤 조사를 받았다. 풀려나는 자리에서 담당과장(?)은 나에게 그동안 고생시켜서 미안했노라고 말한 다음 “당신 재임용은 염려 마시오”라는 언질까지 주었다. 순진했던 나는 그때 그 말이 바로 나에 대한 재임용탈락 통고임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로부터 겨우 한 달쯤 지난 1976년 1월, 그러니까 꼭 31년 전 이맘때, 내 앞에 마주앉은 교무처장은 아주 괴로운 표정으로 나의 구명을 위해 문교부 관리를 만난 사실까지 털어놓으면서, 나의 탈락이 문교부로서도 어쩔 수 없는 더 강력한 부처의 지시임을 암시했던 것이다.

이때 전국 98개 대학에서 재임용 탈락한 교수는 모두 416명이라고 한다. 엄청나게 많은 숫자인데, 그래도 정치적인 이유로 쫓겨난 것은 20여명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1978년 4월 <해직교수협의회>라는 단체를 만들었을 때, 김동길(연대) 김병걸(경기공전) 김윤수(이대) 노명식(경희대) 문동환(한신대) 백낙청(서울대) 서남동(연대) 성내운(연대) 이문영(고대) 등 20여명의 전직 교수들이 모였던 것이다. 웃기는 것은 강원도 원주의 S대학으로서, 이 대학은 거의 전 교수를 탈락시킴으로써 세상을 놀라게 했다. 사실인지 모르겠으나, 당시 문교부 관리가 대학 책임자를 만나 일부 교수는 구제하라고 설득했다는 설이 있다. S대학의 처사는 그러지 않아도 의혹에 싸인 교수재임용제를 더욱 희화화한다는 것이었다.

1980년대 초 신군부 집권과정에서 다시 한번 해직의 태풍이 대학을 강타한 다음 이제 교수재임용제는 정권의 손을 떠나 사학재단으로 넘어갔다. 지난 4반세기 동안 수많은 해직교수들이 부당한 재임용탈락에 대항해 법적 행정적으로 싸웠지만, 복직에 성공한 것은 10% 미만이다. 과거 정권에 밉보여 쫓겨난 교수들이 4년간의 해직 후에 대체로 복직이 허용된 것을 상기하면, 교수들의 밥줄을 움켜쥔 사학재단의 힘은 정치권력의 그것보다 더 집요하고 심층적이며 영속적이다. 수학처럼 참과 오류가 명명백백하게 갈라지는 문제에 대해서조차도 학회가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할 만큼 사학은 막강한 권력이고 공포의 대상이다. 그렇기에 고 이수인(李壽仁) 의원은 사학과 그 배후를 싸잡아 ‘교육 마피아’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막강한 사학권력 행사에 사법부의 역할은?

몇 해 전 헌법재판소는 사립학교법상 교수재임용제도가 ‘헌법 불합치’라는 적극적인 결정을 내린 바 있다(2003.2.27.). 그리고 헌재의 이런 결정에 부응하여 국회는 ‘대학교원 기간임용제 탈락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이라는 긴 명칭의 법을 통과시켰다(2005.7.13.). 이 법에 따라 교원소청심사 특별위원회가 구성되었고, 그리하여 289명의 탈락교수들이 재심을 청구, 그중 117명이 탈락의 부당성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에 김명호 교수 사건을 맡았던 항소심 재판부는 김 교수의 학자적 능력을 긍정하고 헌재의 불합치결정 효력이 이 사건에도 소급하여 적용되어야 함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교육자적 자질’을 근거로 대학당국의 재임용거부 결정이 유효하다고 판단하였다.

판결문을 읽어 보건대 김명호 교수가 신중하고 타협적이며 사교적인 품성의 소유자가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한 사람의 교육자적 자질을 구성하는 결정적 요소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오랫동안 대학사회에서 살아온 내 경험에 의하면, 어떻게 저런 인물이 교수가 됐을까 싶은, 학문과도 거리가 멀고 교육과도 상관이 없는 듯한 사람을 마주치는 수가 더러 있다. 그런 인물일수록 학내정치에 능해서 주요 보직을 맡기 일쑤다. 그래서 나는 교수재임용제의 폐지 자체에는 선뜻 찬성하기 어렵다. 하지만 기득권체제의 한 축으로서 사학권력이 학문과 양심 위에 군림하고 사법부가 이런 체제의 존속에 합법성을 부여하는 데 만족하는 한, 국민들의 저항적 정서는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이런 국민감정이 납득되지 않는 판사, 검사님들은 귀가 후 두어 시간 짬을 내서 <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를 빌려 보시기 바란다. 법과 정의의 구현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사법절차와 행형제도가 때로는 한 성실한 인간의 삶을 얼마나 무자비한 파멸로 끌고 갈 수 있는지 그 영화는 너무나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결코 남의 현실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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