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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자 (2006-09-27 07:42:52, Hit : 5097, Vote : 1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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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학의 위기… / 홍세화
리영희 선생의 대담집 <대화>에는 일제 강점기 말 중학 시절에 ‘데칸쇼’와 만났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황국 신민화를 강제당한 상황에서도, 아니 그런 상황이었기에 더욱 “인간의 진정한 가치와 삶의 궁극적 의미를 탐구”하려고 데카르트·칸트·쇼펜하우어와 씨름했을 것이다. 선생을 이 시대의 사표로 우뚝 서게 한 원천에서 인문학 영향을 빼놓을 수 없음을 짐작게 한다.

바야흐로 인문학의 위기가 시대적 화두다. 고려대 인문대 교수들 전원이 “무차별적 시장논리와 효율성에 대한 맹신으로 인문학은 그 존립 근거와 토대마저 위협받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고 선언했고, 80개 대학이 참여한 전국 인문대 학장단은 “오늘날 직면한 인문학의 위기가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진정성을 황폐화시킬 수 있음을 자각한다”고 이어받았다. 9월25일부터 30일까지 ‘인문주간’이 선포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일련의 선언과 선포식의 뜻에 공감하면서도 그것들이 이벤트성 행위나 해프닝으로 느껴지는 것은, 또 이런 ‘과녁 없는 활쏘기’를 그대로 보도하는 <한겨레> 지면에서 공허함을 느끼는 것은 나만의 일일까?

가령 작년 5월 고려대가 ‘무노조’ 경영철학 말고는 별다른 철학을 보여주지 않는 이건희 삼성 회장에게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팔았던’ 때, 과문의 탓인지 인문대 교수들이 어떻게 저항했는지 잘 알지 못한다. 당시 대학 권력 쪽의 학생 징계 의지를 철회시킬 수 있었던 게 나름의 ‘인문학적 상상력’과 ‘비판적 지성’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믿지만, 그것들은 올해 초 통합 보건대 학생 차별에 반대한 학생들에 대한 보복성 출교 조처를 막지 못했다. 평소 ‘대학은 산업’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어떻게 저항했는지, ‘일용잡급직’으로 착취당하는 시간강사들이 학문 창달에 기여할 수 있도록 어떻게 연대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이 땅의 인문대 교수들도 기득권 성채의 수문장 노릇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부문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인문학의 위기는 인문학자의 위기이며, 인문학자들 중 본받을 만한 사표는 찾기 어려운 데 반해 본받아선 안 될 인물이 더 많은 데서 비롯된 게 아닐까?


이 점에서 한겨레가 최근에 한국철학회에서 벌어진 일들을 추적하고 그 의미를 짚어내지 않은 것은 못내 아쉽다. 알려진 대로,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추진 중단을 촉구한 ‘선진화 국민회의’의 집단 성명에 전·현직 한국철학회 회장 9명이 참여해 주도했다. 이에 200여명의 철학자들이 이한구 한국철학회 회장의 사과와 사퇴를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회장 직함을 내세워 서명운동을 주도함으로써 한국철학회 회원들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한 점을 문제 삼고 있지만, 한국 학계의 일반적 현실을 돌아보면 획기적 의미가 담겼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거의 모든 학계에서 ‘교수-제자’의 위계질서는 봉건적 ‘장인-도제’ 관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더욱이 학계의 좌장이나 선임자들은 ‘밥그릇’ 분배권을 장악하고 있어서 모든 비판의 영역 바깥에서 군림할 수 있다. 그런데 제자였던 자들이 감히 올챙이 시절을 잊고 그들을 키워주었다고 믿는 좌장이나 명예교수들에게 대든 것이다. 인문학의 위기를 말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자성의 목소리’가 진정성과 실천성을 갖는 것은 만장일치의 인문학의 위기선언보다는 기존 질서에 맞선 ‘항명’ 쪽에 있을 것이다.

홍세화 시민편집인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16027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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