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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순에 대한 새로운 도전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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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이있는세상 (2006-04-22 00:01:57, Hit : 11165, Vote : 2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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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와 불화한 ‘조선의 코페르니쿠스’ - 홍대용의 "의산문답"

서울대에서 선정한 고전 100선 중에 “의산문답”이 그간 청소년과 일반인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단행본이 출간이 안 되었기에 최대한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우리고전! 청소년들에게 많이 읽혀져 교양과 논술에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한겨레신문 책과지성 4월14일자 - 의산문답 서평>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 의산문답 - 개혁을 꿈꾼 과학사상가 홍대용의 고뇌
홍대용 지음. 이숙경·김영호 옮김. 꿈이있는세상 펴냄.

시대와 불화한 ‘조선의 코페르니쿠스’
18세기 영·정조 시대 대표적 실학자 홍대용
지동설·중력설 등 근대 우주론설파하고
인간중심주의·중화주의 세계관 부정하는
파격적 행보로 지배계급한테 배척 당해
절친한 벗 연암만이 ‘당대 최고 인재’ 죽음에 절망  

연암 박지원의 산문 ‘홍덕보 묘지명’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중국가는 사람을 보내고 난 뒤 나는 (중국)항주사람들이 덕보에게 보낸 서화며 서로 주고받은 편지와 시문이며 이런 것 열 권을 손수 찾아내어 빈소 옆에 벌여 놓고 관을 어루만지며 통곡하였다. 아아! 덕보는 통달하고 명민하고 겸손하고 고아했으며, 식견이 심원하고 아는 것이 정밀하였다. 특히 율력에 정통하여 그가 만든 혼천의 등 여러 기구들은 깊이 생각하고 오래 궁구하여 슬기를 발휘해 제작한 것이었다. 애초 서양인은 땅이 둥글다는 것만 말하고 회전한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덕보는 일찌기 지구가 한 번 돌면 하루가 된다고 논했는데 그 이론이 미묘하고 심오하였다. 그는 미처 이에 관한 책을 쓰지는 못했지만 만년에 이르러 지구가 회전한다는 사실을 더욱 자신하여 의심치 않았다.”(박희병 <연암을 읽는다>)
덕보는 18세기 조선 영·정조시대 실학자로 북학파의 선두주자 홍대용의 자다. 호는 담헌. 1731년(영조 7년)에 태어나 1783년(정조 7년)만 52살에 세상을 떠났다. 연암(1737-1805)과 동시대인이요 절친한 벗이었다. 그의 갑작스런 죽음에 연암은 절망하고 비통해했다. 연암이 홍대용의지구 자전설을 언급하면서 “미처 이에 관한 책을 쓰지 못했지만”이라고 한 것은 착오이거나 홍대용의 만년작이자 대표작인 <의산문답>을 읽지 못한 탓으로 보인다. <의산문답>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무릇 땅덩이는 하루에 스스로 한 바퀴를 도는데, 땅 둘레는 9만리이고 하루는 12시간이다. 9만리 넓은둘레의 땅이 12시간에 도는데, 그 속도는 번개나 포탄보다도 더 빠른 셈이다. 땅이 이처럼 빠르게 돌기 때문에 허공의 기가 격하게 부딪치면서 허공에서 쌓여서 땅에 모이게 된다. 이리하여 상하의 세력이 생기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지면의 세력 즉, 땅이 끌어당기는 힘이다.”

9만리는 실제 지구 둘레 약 4만㎞에 근접한 수치이며, 12시간도 자시·축시·인시 등 12지에 근거한 시간개념인 점을 감안하면 지금과 별 차이가 없다. 당시의 과학지식으론 역부족일 수밖에 없어 모호하긴 하지만 중력의 존재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파악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개념은 지구가 그토록 엄청안 속도로 돌아가는데 왜 사람과 만물이 풍비박산하지 않으며 둥근 지구 표면에 붙어 있는 사람들이 왜 떨어져 나가지 않고 달과 별이 아래로 곤두박질하지 않는지 등으로 이어지는 <의산문답> 우주론과 세계인식론에 토대가 된다.그것은 또한 우주무한설과 인간세상 가치들의 덧없음, 지구 및 인간중심주의 부정, 음양오행설 부정, 중화주의 세계관 부정으로도 나아간다.

코페르니쿠스(1473-1543)가 이미 지동설을 내놨고 갈릴레이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했던 때가 1616년이었으니, “애초 서양인은 땅이 둥글다는 것만 말하고 회전한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고 한 연암의 인식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에 회부되고 함구령에 처해진 데서도 알 수 있듯 서양 역시 지동설이나 자전설은 매우 위험한 이단이었고 일반인들은 접하기도 어려운 불온사상이었다. 김석문(1658-1735)의 <역학도해>가 이미 덴마크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1546-1601)의 우주관을 싣고 지구가 1년에 366회전한다고 썼는데 담헌이 그것을 읽어봤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의산문답>은 비록 지구 공전 사실을 모르는 등 한계가 있었지만 자연과학 혁명을 거친 지금 봐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자연관과 우주론를 펼쳐놓고 있으며, 그것을 토대로 한 세계인식, 사회인식은 시대와 불화할 수밖에 없을 만큼 파격적이며 시대를 훌쩍 앞서 있다.

●성리학 부여잡은 기득권 비판

<의산문답>의 ‘의산’은 조선과 중국의 경계였던 만주 요녕성 북진현 서쪽의 ‘의무려산’을 가리킨다. 담헌은 35살이던 1766년 서장관이었던 숙부 홍억을 따라 연경(베이징)에 가서 60여일간 머물렀는데, 그때의 체험이 이 책의 집필동기가 됐거니와, 의산은 그 여행길에 거치게 되는 곳이고, 책 속의 주인공들인 ‘허자’가 ‘실옹’을 만나러 가서 ‘문답’을 벌인 곳이다. <의산문답>은 그 가공의 인물들이 자연·우주와 세상사에 대해 주고받은 문답집이다. 꿈이있는세상이 펴낸 <의산문답>은 여기에 이 고전 걸작을 오늘의 관점에서 어떻게 읽고 응용할 것인가를 고민한 출판사와 역자들의 문제의식을 강하게 녹여넣은 책이다. E.H. 카의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명제를 모토로 삼은 이들은 <의산문답>이 현재의 우리사회 문제의 본질을 드러내고 치유를 위한 시사점을 찾는데도 유용하다고 생각한다.원서에는 없는 장·절 구분을 도입하고, 주를 붙이고, 지금 현실의 문제들과 당시를 대비하면서 문제의식을 환기하는 글들도 따로 덧붙였다.

●지금의 문제와 대비하며 읽어볼 만

이들이 보기에 이앙법과 대동법 등이 도입된 18세기 조선사회는 생산력이 폭발적으로 증대됐으나 그 열매는 기득권층이 독식하다시피했으며, 이런 부익부빈익빈의 양극화속에 수많은 난민·기민들이 발생하는 등 기존체제가 그에 따른 변화를 수용할 수 없는 한계에 다다른 변혁의 시대였음에도 ‘허자’로 대표되는 당시 지배세력은 낡아빠진 기성이데올로기 성리학을 부여잡고 개혁을 완강히 거부했다. 이들은 실학파의 대변인격인 ‘실옹’의 입장에서 오늘날 한국사회가 바로 18세기 조선사회와 닮아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런 점에서 이미 250여년 전에 관과 곽으로 싸고 치장한 장례문화를 비판한 <의산문답>의 대목은 특히 흥미롭다.

이런 ‘과격한(?)’ 사상의 소유자 담헌이 시대와 불화한 것은 당연했다. 비록 잘나간 조상 덕에 한때 말단 벼슬자리를 맡긴 했지만 그는 당시 지배계급들이 갔던 길을 사실상 거부했고 또한 배척당했다. 연암이 ‘홍덕보 묘지명’에서 “하하 웃고, 덩실덩실 춤추고, 노래하고 환호할 일”이라는 역설로 담헌의 죽음을 슬퍼한 것은 세속명리에 눈이 멀어 동아시아 당대 최고의 인재를 깔아뭉갠 그 시대와 지배계층에 대한 저주였으며, 담헌은 바로 연암 자신이기도 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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