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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순에 대한 새로운 도전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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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자 (2005-06-10 23:15:21, Hit : 13240, Vote : 3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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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노교사의 넋두리---(퍼옴)
( 교육부 게시판에서 퍼옴.)


러시아가 왕정 국가였을 때 , 죄수들이 가장 무서워한 형벌은 ‘벽돌 나르기’였다고 한다. A라는 지점에 쌓여있는 벽돌을 B라는 지점으로 옮기게 하고 , 다음 날엔 B에서 다시 A로 옮기는 일을 반복하는 일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메테우스’가 겪은 좌절의 고통을 죄수들이 느끼게 만드는데 제 1의 목적을 둔 형벌이었다.

여러 종류의 혹독한 고문을 이겨낼 정도로 의지나 정신력이 강했던 사람일지라도, 육체 고통이 좀 더 적은 이 형벌만큼은 당해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서 한 달 정도만 생활하면 거의가 미치거나 죽어 버렸다고 한다.

두들겨 맞거나 , 굶게 될 것이 두려워 벽돌을 나르는 노동 자체만으로도 괴로움이 크련만 ----. 어제까지 이루어 놓은 노동이 아무 쓸모가 없다는 뜻을 강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벽돌을 원래 자리로 되돌려 놓게 만든 것은, 성취의 기쁨이나 이 세상에서 그들의 존재 가치를 철저히 빼앗는 ‘정신 고문’이었다.

그 상태에 이르면 , ‘ 살아 있는 자신의 존재’가 바로 자기 자신에게 가장 큰 공포가 되고 부담이 되리라 . 그리고 살아있다는 사실에 대해 눈곱만큼의 환희도 없다면 , 삶 자체에 대한 지겨움은 견디지 못할 정도로 확대되어 생명을 갈기갈기 찢어 놓기 마련이고---
총이나 칼로 사람을 빨리 죽이면 살인 범죄이고 공장의 매연이나 수질 오염처럼 생명을 빼앗는 속도가 느리면 ,같은 살인일지라도 허용되는 모순(矛盾)속에서 살기 때문일까 ? 수용소의 관리들은 강제 노동으로 서서히 죽이는 행동에 대해 전혀 죄의식이 안 생겼을지도 모른다.

나도 이롭고 세상도 이롭게 살면 좋으련만---- 다른 인간에게 필요 이상의 고통을 주는 불행이 나의 행복의 기본 조건이 되어야하는 이들의 삶만큼은 사조직을 구성한 폭력배들 삶만큼이나 호감이 가지 않는다. 그 일에서 심지어 통쾌함 내지 즐거움을 느꼈다면 그들은 이미 악마나 다름없을 만큼 인간성이 파괴된 것이 되겠다.

종류가 다를 뿐 ‘ 굶어 죽는 고통’이나 ‘ 채찍아래에서 벽돌을 나르다 육체의 힘이 다해 죽는 고통’이나 크기에 있어서 별로 차이가 없다 는 생각이, 때로는 목숨이 붙어있는 상태로는 그 손아귀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는 절망이 죄수들 가슴을 짓누르기도 했으리라. 그래서 강제 수용소장의 뜻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다가 뾰족한 방법이 없으니 굶어죽는 방법을 마지막 저항 수단으로 선택했을 수도 있었을 법하다.

‘죽어야겠다.’는 사람을 괴롭힐 것은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겠다. 폭력이나 배고픔 등등의 육체적 고통은 물론이요 , ‘죽는 것을 미워하고 사는 것을 좋아하는 편애(偏愛)’때문에 나오는 정신적 고통도 뛰어넘는 기회가 되려나 ? 그래서 우리가 싫어하는 그 번뇌(煩惱)도, 큰 깨우침에 이르게 하는 씨앗이 될 수도 있나보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의미나 곰곰 되새겨보며,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는 비폭력적인 사람을 향해, ‘ 사악한 선동으로 형무소 죄수들 사이의 내부 단결이나 , 화합을 깨치며 나아가 형무소장을 뿔나게 만들어 동료 죄수들에게 괴로움을 끼친다 !’ 외치는 인물들이 있을지 모른다.

그것이 바로 수용소장을 기쁘게 하는 것임을 남보다 빨리 알아챈 것은 생존 본능에 가까운 ‘약아빠진 힘’이리라. 그 결과 다른 죄수들보다 약간 더 편한 노동을 하게 되고, 식사 때 남보다 빵 한 조각 더 받는 행복을 맛볼 수 있으니까---.

빵으로 영혼을 파괴하는 수용소장도 얄밉지만 그렇게 고귀함이 깡그리 파괴된 사람도 정말 흉물스럽다.

러시아의 벽돌 나르기 형벌처럼 의미가 없는 활동을 교육이라 우기며 강요하는 교육 제도나 학교 체제가 있다면 바람직하지 못하다. 바로 그런 속에서의 활동이란, 겉이야 교묘하게 교육처럼 포장했지만 교육 목표나 교육 내용이 없는 학교 놀이로 , 나아가 학생과 교사의 시간이나 빼앗을 뿐인 잡무로 전락하기 마련이니까---.
교육계에서도 승진이나 좋은 곳으로 이동하려 갈망하는 분들은 특별 점수를 받으려 매우 애를 쓴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 그 점수를 받으려면 특별한 실적이 필요하고, 그 실적은 다른 동료들의 실적 과 달리 눈길을 끌 수 있어야 유리하다. 독특한 것을 찾는 노력이 지나쳐 보편성이 없거나 교육 목표가 뚜렷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비교육적인 활동을 ‘교육’이라 우기는 경우 ‘ 학교 놀이’라는 혹평을 피하지 못한다. 그런 학교 놀이에 국민 혈세인 교육 예산이 낭비되는 액수를 어림잡아 생각해보면 마음이 편치를 못하다.

학부형이나 학생들의 최고 관심인 학생들의 성적 향상도 학교놀이로 변질될 위험을 다분히 품고 있다.

이놈의 학생 점수 올리기가 참 여러 가지 얼굴을 하고 있기에 아주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도둑놈처럼 감시해야할 것 같다. 가르침이 있으면 배움이 있어야 하므로 제대로 수양이 된 교사가 학력 신장을 주장하며 노력할 땐 당연히 바람직하겠다.

하지만 교육 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업적을 수치로 나타내기가 가장 쉬우니, 바로 자신의 출세를 위한 수단으로 학생 성적 향상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 바로 그들의 정열의 크기에 비례해서 건전한 교육은 무너진다.

더욱 걱정스런 현상은 비리가 많은 학교일 수록 성적 올리기에 혈안이 된다는 점이다. 재정 비리나 운영 잘못 쪽으로 쏠릴 학부형들이나 학생들 분노의 눈길을 모의고사 성적 내지는 입학고사 성적을 수시로 내밀어 보여 정신 못 차리게 혼을 빼 놓으려는 음흉함이 도사리고 있는지 눈여겨 보아야할 대목이다.

이에 덧붙여, 교육보다는 상급 기관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보니 학교 놀이를 하는 경우도 있다. 과거 어느 날, 약 200여 명의 학생을 인솔하고 경로 효친에 관한 웅변대회에 참석하라는 지시를 받은 적이 있었다. 해당 장소에 도착해 보니 웅변대회는 이미 1 주일 전에 있었다. 그 날은 단지 시상 분위기를 훈훈하게 만들어줄 박수부대로 불려온 것에 불과했었다.

원래 웅변대회 참석으로 정규학교 수업을 대신 하는 것도 썩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 경로 효친 사상을 학생들에게 일깨워 주기 위한 특별 교육활동’ 이라는 말이 떨떠름한 기분을 다소 가라앉혀 줄 수 있었다.

그러나 박수 부대로 참가하는 것은 도대체 그 빈약한 명분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

1시간을 넘게 기다리는 동안이었다. 곰곰이 내가 진정으로 교육활동을 하는 것인지 되 새겨 보았다. 결국 , '이 순간, 이 자리에서 내가 해야 할 가장 크고 보람 있는 일은 , 교육을 진지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교육청 내지 여타 사회인들의 잘못된 태도에 경종을 울려주는 것이다.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눈을 질끈 감고 위화도에서 회군을 한 이 성계 장군 흉내를 내어 학생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 그로 인해 당연히 어느 정도 시련이 있었고--- )

요즈음에도 학교를 움직이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 상급 기관의 명령인 현상들이 나타나는 것을 볼 때면 정말 섭섭하다. 꼭 강제 수용소 죄수들의 벽돌 나르기처럼 , 교육 개혁을 위해 희생을 무릅썼던 많은 교사들의 지금까지 노력이 산산이 짓뭉개어 지는 것 같아 절망감이 그득히 괴어오르고--

거의 대부분의 교과 담당 교사들이 과거 경험을 들어, 혹은 교육 목표 달성을 위한 여건이나 교재 및 방법 개발이 아직은 미흡한 상태임을 지적하며 수준별 이동 수업을 꺼림칙하게 여기련만, 교육 효과보다는 그 놈의 남보다 앞서려는 실적 때문에 강행하는 학교들을 보면 마음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진다.

학교나 교사를 움직이는 것이 교육이 아니라, 운영 체제 (system)뿐이라면, 뇌는 이미 죽은 상태에 빠졌지만 몸만 살아있는 식물인간에 비유 되려나 ? 그리고 이런 경우가 바로 관련교과의 전문가인 교사의 교권이 해당 과목에 대해 전혀 문외한들로 구성된 체제에 의해 파괴당하는 경우이고---. 그런 경우, 수업 준비에 쏟아부어야할 교사들의 에너지가 ‘교권 방어’쪽으로 쏠리게 되면 , 사회적으로 얼마나 큰 낭비일까? 또 그런 무모한 학교 놀이에 국민 혈세인 국가 예산의 낭비는 얼마나 클까 ?

이제 붉게 타오르는 저녁노을처럼 , 마지막 남은 정열을 교단에 쏟아 부어야할 50대 후반의 교사들 중 하나인 내가 ----, 만약 죽은 지 상당한 시간이 흘러 썩은 물이 줄줄 흘러나오기 시작하는 송장처럼 그리고 공동묘지의 침묵을 바람직하게 여기듯, 굳게 입을 다문다면, 얼마 남지 않은 기간이나마 어찌 감히 펄펄 살아 움직여야할 학생들을 무난하게 지도할 수 있을까 ?

나는 다음 말을 주문처럼 외우면서 내 자신을 타이른다. ‘ 하나의 교사는 하나의 학교가 되어야한다. ’라고 ---. 한편으론 교육에 대한 바른 이해와 철학을 세우기 위해 항상 깨어있고, 다른 한편으론 자신이 세운 교육활동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겠다. 그런 때만이 , 주위에 감동을 줄 수 있고 , 나아가 승진을 위한 학교 놀이에 대한 유혹을 떨치고 , 선비로써의 고아한 기백을 가지고 당당히 학생들 앞에 설 수 있을 것 같다.

‘ 내 비위 거스르면 빵을 주지 않겠다 !’ 는 협박에 굴복하는 강제 수용소의 처참한 죄수의 모습이 보이게 된다면 --- 내 스스로가 용납할 수 없는 교단에서의 슬픈 추억이 될 것만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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