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1346   68   7
  View Articles

Name  
   운영자 (2013-09-20 07:00:01, Hit : 2375, Vote : 455)
Homepage  
   http://www.seelotus.com/
Subject  
   깨달음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진실한 삶 그 자체를 뜻하는 것
제다가 존자가 게송으로 말한다.
본래의 마음의 법을 통달하면
법도 없으며 법이 아닌 것도 없네
깨닫고 나면 깨닫지 못한 것과 같아
마음도 없고 법도 없다


본래의 마음 법이란 무엇인가?
앞서 살펴본 것처럼 불성을 지닌 본래의 마음을
청정한 우주심으로 본다면 본래의 마음 법이란
바로 무의적인 연기법이다.
즉 만물은 무의적인 연기법에 따라서 진화하며,
이러한 생의(生意)의 이법
즉 마음 법이 바로 연기의 이법을 따른다.
그러므로 연기법을 통달하면
"법도 없으며 법이 아닌 것도 없다"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있음과 없음은
연기의 양면성으로 비동시적 동거성을 지니므로
이들 중에서 어느 한 극단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의 중요성을 보이고 있다.
연기의 세계에서는 언제나 주고받는 변화가 일어나므로
법이나 법 아닌 것의 분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깨달은 뒤에는 깨닫지 못한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만유가 언제나 여여한데 무엇을 깨닫고
무엇을 깨닫지 못한다고 분별해서 말할 수 있겠는가?
만약 특별한 깨달음이 존재한다면 거기에는 유의적으로
조작된 분별심이 내재할 것이다.
깨닫고 보면 깨달음이란 없다고 하면서
"마음도 없고 법도 없다"라고 했다.
이것은 마음이라는 주관과 법이라는 객관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주관이 존재하므로
객관이 존재하고, 객관이 존재하므로 주관이 존재한다는
주객불이를 뜻한다.
이런 관점에서 마음과 외부대상인 법을
분별해서 보는 것은 그릇된 것이다.
따라서 깨달음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진실한 삶
그 자체를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선에서는 불교를 깨달음의 종교로 본다.
그리고 임제 선사가 "마음속으로 헤아리기만 해도
이미 틀려버리고, 생각을 움직였다 하면
이미 어긋난다"라고 하면서 깨달음에서는
눈앞에 현전하는 한 생각을 매우 중시한다.
또한 "여러분! 오직 번뇌 망상에서 벗어나
주체적 입장을 확보한 나 자신 하나면 됐지
다시 또 무엇을 찾겠는가?
그대 자신을 되돌아보아라"라고 했다.
이러한 주관적 깨달음은 구체적 삶의 과정인
연기관계를 거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왜냐하면 인간을 비롯한 우주 만유는
무질서한 혼돈이 존재하는 보편적 세계에서
역동적인 연기적 삶을 이루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눈앞의 현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로 주고받는 연기적 세계에서는 종합적이고
전일적인 통섭적 사고와 이해의 바탕에서
깨달음(실은 깨달음이라 이름할 것도 없지만)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이시우(천문학자) , '직지(直指), 길을 가리키다' ---




























Prev
   사람들은

운영자
Next
   나는 행복하다

운영자


Copyright 1999-2018 Zeroboard / skin by Zety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