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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자 (2014-02-03 22:43:57, Hit : 1421, Vote : 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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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사진 한 장

어느 날, 교정에 2절지 크기의 포스터가 붙었다.
포스터에 들어 있는 사진을 본 순간, 나는 심장이 멎는 듯했다.
이철규의 주검 사진이었다. 이철규는 조선대 학생이었는데,
교지 편집장이었던 그는 경찰의 수배를 받던 도중 광주 인근
저수지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그 포스터 한 장으로 전국의 대학가는 초긴장 상태에 빠졌고,
부패해 부풀어 오른 이철규의 두 눈과 몸뚱이는
며칠 동안 나의 뇌리에 계속 맴돌았다.
나는 그 사진을 그리기로 했다.
붓을 잡자마자 1주일 동안 밤낮으로 그렸다.
당시 방학을 앞두고 있을 때라 대부분의 수업이 종강한 상태였고,
실기실은 밤마다 한두 명이 있을 정도로 한적했다.
나는 그런 실기실에서 미친 듯이 그림을 그렸다.
두 장의 유화 가운데 한 장은 가로가 240센티미터에
세로가 120센티미터로
베니어합판 한 장을 판넬로 짠 것이었고, 다른 한 장은 가로 세로가
120센티미터인 베니어합판 반장 크기였다.
나는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붓질을 해댔고,
그러는 동안 그림은 차츰 윤곽을 잡아나갔다.
그림에는 자신의 신념을 펼치다가 계략에 말려
결국 죽음까지 이르게 되는
순교자의 모습과 죽은 이철규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나타났다.
나는 그 그림을 완성해놓고는 몸서리쳐야 했다.
나의 분노와 충격을 그림으로 표현했지만
너무나 사실적으로 표현된 탓에 막상 그 그림을 볼 때마다
살이 떨렸고 무서웠기 때문이다.
몇 장의 작은 사진을 보고 가공해낸 이미지들이 혼합되어
커다란 그림으로 다시 표현되고 나니 그 그림을 그린
나 자신도 대하기 힘들게 되었던 것이다.
나에게 각인된 수많은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했고,
창작과 재가공의 과정에서 생긴
수많은 새로운 이미지들이 줄곧 나를 괴롭혔다.
결구 실기실에 펼쳐져 있던 그 그림은 다른 그림들 ....


--- 김윤환 글 예술사회- 적게, 천천히, 인간답게 ---

* 이철규 : 1989년 5월 10일 광주시 북구 청옥동 제 4수원지 상류에서
조선대학교 교지 편집위원장 이철규(당시 25세, 전자공학과 4학년)가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의 중심 인물로
그의 죽음에는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끝내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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