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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자 (2014-11-10 14:54:58, Hit : 1030, Vote :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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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베니 포르툼(Inveni portum)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이
내 유일한 현실적 근심거리라네.
왜냐하면 여러 번 폭풍우를 겪고 나서
이제야 항구에 닿았는데 죽는다면
억울하지 않겠나.
“인베니 포르툼(Inveni portum, 포구를 발견했다는 뜻)”
그렇긴 해도 내 병을 원망하지는 않네.
덕분에 내게 절실했던 휴식을 얻었으니 말이네.
병이 나지 않았으면 결코 쉬지 못했을 걸세.
나는 결핵 요양원에서 18개월을
막 보내고 나온 참이네.
그 기간은 인생의 여러 문제를 진지하게
파고들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네.
조금만 성찰을 깊이 한다면
자네도 나와 같은 결론에 이르리라고 믿는다네.
“아우레아 메디오 크리타스
(Aurea mediocritas, 평범이 좋은 것이라는 뜻.
중도지덕 中道之德.
호라티우스 Horatius의 오드 시집에서
인용된 말로 이 책에서는
‘황금 같은 중도주의’라고 번역하고 설명함)이
라틴어 두 음절이 내 포부는 소박하다는 것,
나는 반항아가 아니라는 증거를
자네에게 줄 수 있겠지.
반항 아이는커녕 우리 은사님들에 대해
아주 좋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네.
교리에 무슨 고약한 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당신들이 받으셨던 교육,
달리 생각하고 느끼는 방법을 알지 못했기에
그들이 그대로 우리에게 전수해 준 교육에서
온갖 잘못이 나온 것이야.
그런 교육이 우리들을 개인주의자,
고립된 사람들로 만들어 놓았지.
요컨대 한 번도 유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우리는 그저 계속 만들어 내고 있었지.
괴로움. 기쁨을 말일세.
우리는 ‘인생’을 누리는 대신
그걸 만들어 내는 꼴이었어.
우리네 편협했던 세상에서 벗어나
한 발짝이라도 떠 놓으려면
그전에 우리는 모든 것을 출발점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네.
그건 고통스러운 작업이고
자존심의 희생 없이는 되지 않지.
그러나 고독은 한층 더 고통스럽다네.
자네도 언젠가 알게 될 걸세.
나에 대해 자네는 주변에 말할 필요는 없네.
열심히 일하고 건전하며
정말 정상적인 생활(‘정상적인’이라는 단어에는
세 번이나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을 하는데
누구에게 무슨 비밀이 될  터인가?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 사회는
그런 생활의 행복을 항상 수상쩍게
여기고 의심하는 듯하네.
신자, 비신자를 막론하고 모든 이에게
공통된 이 편견에 대해 복음 정신에서
아주 멀어져 버린 그리스도교 교우 사회에
일정 책임이 있다고 믿어 마지않네.
타인의 자유를 존중하기에
나는 여태까지는 침묵을 지키는 편을 택했네.
그러나 많은 성찰 끝에,
더없이 큰 존경을 받아 마땅한
한 사람을 위해 나는 이제 그 침묵을 깨기로 했네.
몇 개월 전부터 내 상태가 많이 좋아지기는
했어도 아직 걱정이 남아 있다네.
자네를 만나면 얘기하겠네.
어서 와 주게.

--- 조르주 베르나노스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에서
신부의 친구가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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