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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자 (2016-05-20 17:54:55, Hit : 428, Vote :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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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seelot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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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편한 진실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저 여자가 왜 우는지 나는 몰라.
왜 내 얼굴을 삼킬 듯이
들여다보는지도 몰라.
왜 떨리는 손으로 내 손목의 붕대를
쓰다듬는지도 몰라.
손목은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아픈 건 가슴이야.
뭔가가 명치에 걸려 있어.
그게 뭔지 몰라.
언제나 그게 거기 멈춰 있어.
이젠 브래지어를 하지 않아도
덩어리가 느껴져.
아무리 길게 숨을 내쉬어도
가슴이 시원하지 않아.
어떤 고함이,
울부짖음이 겹겹이 뭉쳐져,
거기 박혀 있어.
고기 때문이야.
너무 많은 고기를 먹었어.
그 목숨들이
고스란히 그 자리에 걸려 있는 거야.
틀림없어.
피와 살은 모두 소화돼
몸 구석구석으로 흩어지고,
찌꺼기는 배설됐지만,
목숨들만은 끈질기게
명치에 달라붙어 있는 거야.
한번만, 단 한번만
크게 소리치고 싶어.
캄캄한 창밖으로 달려 나가고 싶어.
그러면 이 덩어리가
몸 밖으로 뛰쳐나갈까.
그럴 수 있을까.
아무도 날 도울 수 없어.
아무도 날 살릴 수 없어.
아무도 날 숨 쉬게 할 수 없어.
(중략)
나는 아내의 움켜쥔 오른손을 펼쳤다.
아내의 손아귀에
목이 눌려 있던 새 한 마리가
벤치로 떨어졌다.
깃털이 군데군데 떨어져나간
작은 동박새였다.
포식자에게 뜯긴 듯한
거친 이빨자국 아래로,
붉은 혈흔이 선명하게 번져 있었다.
(중략)
산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그 웃음의 끝에 그녀는 생각한다.
어떤 일이 지난간 뒤에라도,
그토록 끔찍한 일들은 겪은
뒤에도 사람은 먹고 마시고,
용변을 보고,
몸을 씻고,
살아간다.
때로는 소리내어 웃기까지 한다.
아마 그도 지금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
잊혀졌던 연민이 마치 졸음처럼
쓸쓸히 불러일으켜지기도 한다.


--- 한강 글 ‘채식주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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