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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자 (2016-09-25 19:52:34, Hit : 137, Vote :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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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시인이 읽은 세상
만약 80세까지 산다고 했을 때
매년 1월 1일에 사진을 한 장 찍는다면
생애에 필요한 사진은 80장이 될 것이다.
한 달에 한 장씩 찍는다면 960장으로
생애를 표현할 수 있다.
이걸 한 달 혹은 하루, 한 시간 이런 식으로
세분해 나가면, 가령 일 초에
한 장씩 찍는다면
2,522,880,000장의 사진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더 세분할 수 있다.
그런데 사진은 어떤 사진이든
그중 한 장, 즉 한 찰나(刹那)이다.
가령 일 초에 한 장씩 찍은 사진이나
일 년에 한 장씩 찍은 사진은
찰나라는 면에서 다를 게 없다.
셔터를 늦추어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측정할 수 없는
얇은 절편(切片)으로 찍히는 게
사진 이미지다.
모든 사진은 이렇게 한 찰나의 이미지를
포착한 것이다.
그런데 한 찰나에 포착한 사진도
무한분할 할 수 있다.
그것은 시간적으로만이 아니라
공간적으로도 가능하다.
가령 모니터 앞에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한 찰나인데 이 한 찰나는
시간과 공간의 절편들이 연결되어서
만들어진 찰나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절편들이 자신을 향해
아니 어떤 중심성도 없이 몰려오거나
몰려다닌다.
그런 절편의 물결에 영향을 받지 않는
찰나는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보는 순간
자신은 무엇들에게 오히려 보여지고,
그 관계들 역시 무엇들에게 보여지거나
보게 된다.
하여 자신뿐 아니라
사물도 절편의 물결 속에 출렁거리는 것이다.
가령 딱딱한 고체라고 생각하는
바윗덩어리도 절편의 물결을
한없이 늘여 가면 ‘액체’일 수 있다.
단지 우리의 시간 속에서만 고체인 것이다.
더불어 어떤 액체성의 접점(接點)도
미분하면 고체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모나드(Monad : 존재의 궁극의 단위)는
동일하거나 딱딱한 것
혹은 뚫고 들어갈 수 없는
극미적(極微的) 본질이 아니다.
모나드는 차라리 액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절편의 물결이 모두 녹아 있는 액체,
그걸 굳이 역동적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좋다.
다만 그런 절편성의 물결이
온 우주뿐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일상적 삶에도 녹아 있다는 것,
하여 부드러운 관절 부위처럼
잘 돌아간다는 것이다.
사진을 볼 때마다
그 절편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달라지는 것을 보게 된다.
그것은 사진이나 사진을 보는
존재만의 변화가 아니다.
서로의 귀퉁이가 닳거나
혹은 오히려 닳음이 날카로워지는 것이다.
그게 사진 이미지다.
이때 이미지란 절편의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이다.
만약 있다면 그것은 객관적 실체일 것이다.
사실 사진은 그걸 잡아내려는
안간힘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진조차 이미지라는 걸 알게 될 때
사진 역시 하나의 모나드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모든 게 중첩된 이미지
하여 낡아가는 게 아니라
더욱 생생해지는 이미지 말이다.
그걸 ‘푸른 인연’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인연들 덕분에 우리는 술을 마시며
정을 나누거나, 시와 노래를 부르고,
사랑을 하다가 때론 싸우기도 하면서
그렇게 엉켜 사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인연들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딱딱해지거나
재미가 없어져 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우울증을 앓거나
죽음의 그림자를 떠올려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그 절편의 흐름, 푸른 인연을
그만둘 수 없다.
우리는 무엇 하나라도 그만둘 수 없다.
삶이 끝없이 중첩되는 것
그리고 그것들이 부딪히며
바람과 파도를 만드는 것,
그 파도가 우리 삶의 귀퉁이를 적시는 것,
그 모든 것들이
마치 사진 속에 함께 서 있는 것처럼
사방에서 몰려온다.
강렬한 색깔로 말이다. <?font>

--- 이광수 / 최희철 글
'사진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 -
사진 찍는 인문학자와
철학하는 시인이 마주친 모나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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